산행기

월악산 영봉등정 및 미륵사지 탐방

야정(野停) 2007. 6. 21. 11:50

제 46회 미투산악회 정기산행을 월악산으로... 새벽 7시 국민은행 앞에 정차한 버스에 51명이 탑승하 여 월악산으로 출발. 중부고속→ 영동고속→ 중부내륙고 속도로를 이용하여 충주 나들목으로 나갔습니다. 그 곳에서 월악산 동편 단양쪽 덕산리 매표소 쪽에서 산행을 시작한답니다. 덕주골에서 시작하면 길이가 길고 층계도 많아 더 지친 다고 하네요. 덕산리 매표소에서 신령들이 산다는 영봉 까지 3.8km 이고 덕주골에서는 4.9km 라고하니까. 덕산리에서 하차하여 산행 시작.(10시 정각) 얼마 가지 않아 오른쪽에 신륵사가 있는데 초라한 가람 이 조용히 앉아 있는 듯, 스산한 느낌마저 주는데 내 부 중앙에는 3층 석탑이 정연하게 자태를 뽐내고 있었 습니다. 신라 말 내지 고려 초기 전형적인 작품형태를 나타내는 수수한 석탑으로 보물 1296호로 지정되어 있 습니다.

        신륵사 내 3층 석탑(보물 1296호)
신륵사를 지나서 보통 산을 오르듯 계곡과 숲 속에서 키톤치드의 향기도 맡으며 조금씩 전진합니다. 마침 하늘에는 구름이 약간 끼었는지 따거운 햇빛은 직접 비쳐지지는 않고... 한 1km는 힘드리지 않고 산책로 오르듯 하였는데... 그 후로 가파르게 몰아치는 산세. 숨이 턱까지 차고 흐르는 땀방울에 얼굴은 붉게 상기되고... 1.8km 능선에 오르니 일행의 7∼8명이 능선에 앉아 건너에서 넘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쉬고 있지 않는가?

            능선 마루턱에 있는 이정표
현제 겨우 반 왔는데 왜 이리 힘이 드는지? 나머지 1.8km를 더 올라야 정상인 영봉(1094km). 길은 가파르지만 그래도 그늘진 곳을 오르다 보니 어 느덧 영봉이 1.1km 남았다는 이정표가 나타납니다. 그런데 바로 앞에 영봉의 큰 바위덩어리가 보이는데 어떻게 1.1km가 남았다는지 의심스러웠습니다.

            영봉을 이루고 있는 바위

조금 더 가보니 신륵사 삼거리라는 곳에서 바위덩어리 를 끼고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층계를 오르 내리면서 0.5km 가면 보덕암 삼거리가 나 오는데 이곳에서 좌측 위로 층계를 오르면 영봉에 다 다르게 되지요.


           영봉 오르는 층계

영봉 표지석에서 도장 찍고 한 200m 돌아와 여럿이 앉 을 수 있는 곳에서 가져온 점심들을 풀었습니다.



            영 봉 표 지 석

           영봉에서 충주호를 배경으로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솜씨자랑이나 하듯 먹을거리가 진수성찬입니다. 한 40여 분 식사를 끝내고 다시 올라 왔던 길을 그대로 내려가 신륵사 삼거리에서 덕주사 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신륵사 삼거리에서 서남쪽 으로 방향을 틀어 700m 서남쪽으로 가니 송계삼거리.

         송 계 삼 거 리 이정표
송계삼거리에서 서쪽으로 하산하면 동창교(송계주차 장)쪽이나 우리는 덕주골로 하산한다고 합니다. 동창교쪽은 2.8km 이나 덕주골은 3.4km 나 남았다고 하네요. 영봉 밑에서 이곳 송계삼거리까지는 능선 길 로 오르내림이 없이 무난하게 왔으나 헬기장만 지나 면 수백 개의 층계로 이루어진 하산길입니다.

         헬기장에서 영봉을 향해
얼마나 왔는지는 모르나 960고지 전망 좋은 바위에서 영봉, 중봉, 하봉과 충주호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하 나씩 찍었습니다.

          960고지에서 충주호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으려니 좋은 포토 라인에서는 모든 회원 들을 다 보내야 합니다. 후미팀과 함께 마의 계단을 계속 밟고 하산. 송계삼거리 에서 마애불까지 마의 1.9km를 끝내고 마애불에 도착.

           마 의 계 단
신라 마지막 경순왕의 큰 딸 덕주공주는 신라의 부흥 을 꿈꾸며 이 마애불을 조성하였다 합니다. 높이 15m 의 이 거대한 마애불상 위에는 목조 건물이 있었던 흔 적이 있고 모든 조각이 간략하고 치졸한 조각 수법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아 고려 초기의 양식이며 손은 구 품인(九品印)을 한 것으로 보아 아미타불을 조각하였 고 이는 보물 406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마 애 불(보물 406호)
이곳 마애불이 있는 곳은 상덕주사 터였으나 전란에 소실되었다고 합니다. 마애불 있는 곳에서 덕주골까지는 2.5km 남아 있고, 길은 이제부터 얇은 돌을 깔아놓은 편편한 길로 되어 있어 보행하기 훨씬 수월하였습니다. 울 옆지기는 먼저 내려 가고 나는 덕주사 주위를 자세 히 훑어 본 다음 천천이 혼자 내려 가고 있었습니다. 중간에 성터가 있었는데 이는 덕주산성을 복원하여 놓 았나 봅니다. 고려 고종 때 몽고가 침입하여 충주 백 성이 피난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고 규모는 확실히 알 수 없다고 합니다.

          덕 주 산 성
덕주사 도착. 덕주사는 신라 26대 진평왕 때 창건되었고 나중에 덕 주공주가 와서 신라 재건을 위해 마애불을 조성하고 죽자 그 후 덕주사로 개명하였다고 합니다. 이곳은 음기가 너무 세서 혹은 남아 선호(男兒 選好) 의 토속 신앙이 곁들여서 인지 남근석이 많이 발견되 었다 합니다. 이를 절 앞에 모아 놓았으며

            남 근 석
대웅보전은 삼신불(법신불, 화신불, 보신불 즉 비로자 나불, 석가불, 노사나불)을 모셔 놓았으며 인도 산스크 리트어(범어)로 각인된 비석이 있는데 남한에서는 유 일하다고 하네요. 그러나 너무 흐리고 보이지않아서 국 가 보물로도 지정되지 못했습니다.

    제천 송계리 대불정주 범자비(大佛頂呪 梵字碑; 인도글씨로 된 비석)
덕주사 조금 내려오니 하 덕주산성을 보수하고 덕주성 도 다시 만들었더군요. 덕주골 입구 송계계곡에 다다르니 4시 30분.

          덕주산성과 덕주성
점심 식사 시간을 빼고 거의 6시간 산행을 한 것 같군요. 수량이 풍부한 송계계곡에 탁족하면서 지친 몸을 푸니 한결 몸이 가벼워졌습니다. 사자 빈신사지 석탑(보물 94호)을 다녀오려 하였으나 1km 밖이라는 바람에 갈 수가 없었습니다.

사자 빈신사지 석탑(네 마리 사자상 안에 비로자나불이 안치되어 있음)(퍼옴)
우리가 타고 온 버스 옆에서 수박을 쪼개 먹으며 서로 좋아하는 음료로 목을 축이면서 한 참을 쉰 다음 승차. 5.5km 떨어져 있는 미륵사지를 들리기로 하였습니다. 미륵사지 버스 정류장에 차를 세우고 500m를 걸어 들 어가야 됩니다. 우리나라 절 중 유일하게 북향을 하고 있다고 하네요. 이는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가 신라 중흥으르 이루고 자 하는 마음에서 그리 세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절터에 들어서면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거북 비석 받 침돌이 먼저 보입니다. 길이가 605cm이니 얼마나 크겠습니까?

    석귀부(石龜趺:거북 모양의 비석 받침돌)
 

           석귀부 등에 새겨진 새끼거북
위에 있던 비석은 온데 간데 없어 절의 조성연대나 어 떤 사실이 기록되어 있을 텐데 다섯 차례의 발굴 조사 결과 찾지를 못하였다 하네요. 거북이 등에 새끼 거북이 두 마리가 기어오르고 있는 조각이 앙증스럽군요. 뒤에 있는 5층 석탑(보물 95호)은 중후하면서도 투박 한 모습으로 오랜 세월 굳굳히 버티고 있지요.

         미륵리 사지 5층 석탑(보물 95호)
그 뒤에 있는 미륵입상(보물 96호). 몸에는 검은 색으로 퇴색되어 얼룩이 져 있으나 얼굴만 은 깨끗하게 눈을 지그시 감고 인자한 모습으로 서 있 습니다.

        미륵리 미륵입상(보물 96호)
얼굴의 색상이 변하지 않고 깨끗한 것 자체가 사람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합니다. 이 석불입상은 석굴 형태로 조성되었었으나 화재로 소실된 것으로 추정하 고 있습니다. 또한 덕주사 마애불과 서로 마주보고 있 다고 하네요.

            온달 장군 공기돌
미륵리 사지 관찰을 끝으로 하고 괴산I.C를 통하여 상 경하였습니다. 신령들이 산다는 영봉에 달이 떠오르는 모습을 그린 월악산, 그 월악산 넘어 수안보 쪽에 있는 유물들과 함께 우리의 몸을 달련시키고 마음을 정화시 키는 즐거운 하루가 지나 가고 있습니다. (2007년 6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