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칸에서 단잠을 자고 있는데 기상하라는 소리가 들린다.
아니 중국말로 떠드니까 내용은 모르지만 그러리라 짐작하는
것이다.30분 전에 기상시킨다고 하였으니 지금이 30분 전
이거니 생각하고 끔지럭거리는데 기차가 속도를 줄인다.
속도를 줄이며 역사로 들어가는 차창의 모습에 놀라 모두들
우왕 좌왕. 부리나케 짐을 내리면서 기차에서 내린다.
우리 일행들 역사의 가로등 밑에서 넋나간 사람들처럼 멍
하니 서 있다. 빠진 물건이 없나 확인해 보며 다른 일행이
모두 내릴 때까지 기다린다.
기차는 한 10여 분 정차하고 있었다.
그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될 것을 놀란 토끼마냥 우왕 좌왕
한 것을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나온다.
대략 5시가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하늘은 아직 어둠을 거두
어 가지 못했다. 역 밖에는 우리를 데리고 갈 버스가 대기
하고 있다. 돈황(敦煌)은 란신철도선(간쑤성 란주에서 신
장 위구루의 우루무치까지 가는 열차선) 상에 있지 않아
이곳 유원역에서 내려 버스로 대략 2시간 가야 한다.
동틀녘 돈황의 호텔에 도착해 우선 세면 먼저하고 약간 쉰
다음 아침식사를 하기로 하였다.
돈황은 관광지로 여름에는 8만의 인구가 북적이고 있으나
겨울에는 5만으로 줄어 든다고 한다.
1. 명사산(鳴沙山)과 월아천(月牙泉)
10시 넘어 호텔을 나서 돈황시 남쪽 방향으로 5km 떨어진
동서 40km, 남북 20km인 명사산으로 첫 코스를 잡는다.
명사산은 산 언덕의 모래들이 바람에 굴러 다니면서 나는
소리가 울음 소리같다는 데에서 지어진 이름이라나.
명 사 산
명 사 산
실제로 모래를 확대해 보니 조그만 구멍이 나 있다고 한다.
명사산에 도착하면 우선 낙타를 타고 안쪽으로 들어간다.
낙타를 타 본 적이 없는 우리 일행은 호기심 반,두려움 반
으로 쌍봉 낙타 등에 오른다. 낙타등에서 내릴 때 낙타를
앉히고 내리는데 낙타가 앞발 무릅을 땅에 댈 때 덜컹 앞
으로 쏠렸다가 다시 뒷발 무릅을 땅에 댈 때 뒤로 덜컹 쏠
리니까 조금 놀라게 된다.
그 외에는 말 타는 것이나 별로 차이가 없다.
낙타에서 내려 모래 썰매를 타기 위해 명사산 언덕을 오른다.
모래 언덕을 오르기 좋게 나무 층계를 만들어 놓았다.
층계로 언덕 중간 쯤 올라 썰매를 타고 신나게 내려 온다.
다시 앞쪽에 있는 월아천으로...
사방이 모래 언덕이고 그 가운데 음푹 파인 곳에 초생달
모양의 연못이 있는데 이 연못을 월아천이라 한다.
연못 옆에는 4층 누각이 서 있고 주위에 부속건물이 돌려
있으며 나무들도 여러 그루 서 있다.
낮은 지역으로 물이 다시 솟아나온다고 하는데 천년 넘게
지속되는 자연현상이야 정말 신비롭지 않을 수 없다.
옆에 모래 언덕이 쌓여 있는데 어떻게 바람에 이곳을 덮어
버리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지?
바람이 아래에서 위로 거꾸로 불어 올라가지 않는다면 이렇
게 오래 보전될 수가 없을 것이다.
2. 막고굴(莫高窟)
점심 먹고 막고굴로...
명사산 동쪽 절벽을 파서 만든 석굴인 막고굴은 세계에서
현존하는 가장 규모가 크고 완전한 불교예술의 보고로 낙
양의 용문석굴, 베이찡 서쪽에 있는 대동의 운강석굴과
께 중국의 3대 석굴로 분류된다.
1961년 전국 중점 문물보호단위에 지정되어 그나마 문화
대혁명 때 파손을 면할 수 있었다고 한다.
막고굴 입구의 북대불전
건물 안에 9층 높이의 미륵대불이 34m 크기로, 측전무후가
건립하였다 한다.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
어 많은 외국인 관광객이 찾아온다고...
남북거리가 2km에 달하는 5층으로 된 동굴로 B.C 366년
전진시대 동쪽에서 온 낙준(樂樽)스님이 파기 시작해 당나
라에 이르러서는 불사 동굴이 1000여 개에 달해 이를 일명
천불동이라고 한단다.
돈황은 실크로드 요충지에 있기 때문에 외래 예술과 중국
민족 예술이 막고굴에서 만나 아름다운 불교예술을 꽃피게
하였다.
세월의 흐름으로 파괴를 당했지만 막고굴은 아직도 500여
개의 동굴을 보존하고 있으며 가지 각색의 내용들을 벽화
에 남겨 놓고 있다.
130번 굴은 남대불이라 하는데 크기가 26m인 대불로 개
인이 시주하여 만든 불상이라 한다.
특히 서기 1900년 17번굴에서는 경전, 문서, 자수 등 5
만여 점의 희귀 문물들이 쏟아져 나왔단다.
여러 가지 기록들이 있어 중국 고대 백과 전서로 불릴 정
도이며 이를 연구하는 돈황학이 탄생할 정도라나.
그러나 발견자 왕원록이 외국 조사대에게 헐값에 팔아 넘겨
현재 중국에 남아 있는 것은 6000여 점에 불과하단다.
신라 혜초스님이 쓴 "왕오천축국전"도 이 가운데 들어가
있는데 지금은 프랑스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한다.
막고굴을 끝으로 이번 정식 일정은 마친단다.
막고굴에 있는 작품 중 일부(퍼옴)
막고굴에 있는 작품 중 일부(퍼옴)
17호굴 입구의 모습(퍼옴)
이곳 돈황에서 머지 않은 곳에 만리장성의 서쪽 끝인 위먼
관(玉門關,옥문관)이 있는데 별로 볼 것이 없어 스케줄에
넣지 않았단다.
오늘밤에는 돈황 야시장이나 구경하기로 한단다.
8시에 저녁식사하고 9시에 야시장에 도착, 아직 어두워지
지 않은 시장. 이리 저리 구경이나 하는데 우리 일부 회원
이 보이지 않아 찾아 보니 야시장에서 꼬치를 안주 삼아
또 고량주를 기우리고 있다.
다시 호텔로 돌아 오니 밤 11시.
호텔 정원에서 노천카페가 벌어진 것을 눈감고 들어 갈 회
원들이 아니다. 마지막 만찬을 달빛이 비치는 호텔 노천에
서 불사르고 떠나려는 듯,
모두 둘러 앉아 자기 기호에 맞게 술을 마신다.
돈황의 달밤은 그리하여 기울어져 간다.
3시가 넘은 것 같다.
내일 북경으로 해서 서울로 돌아 가련다.
돈황의 마지막 밤을 위하여!
(2010년 8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