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도 원하던 티베트를 찾을 기회를 찾았다.
이왕에 떠나는 티벹이라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까지 다
녀오기로 한다.
우선 티베트의 역사를 미리 살펴보고 들어가자.
티베트는 중국 서쪽 히말라야산맥 위쪽의 고원지대에 위
치한 지역으로 과거 토번(吐蕃)이라는 고대 왕국이 있
었으며 여러 대의 왕으로 계승되어 오다가 7c 송첸캄포
라는 33대 왕이 티베트를 통일하고 9c 중순 42대 랑다
르마에 이르기까지 200여 년간 왕국으로 지속되다가 민
란으로 멸망한 곳이다.
그러한 지역이 중국 본토 세력이 약해졌을 때는 그냥
달라이라마의 지배하에 놓아두었었으나 1950년 중국이
강성하여져서 티베트를 점령하고 중국 내의 자치구로
편성되고 말았다.
고유의 문화와 라마교라는 티베트 불교를 신봉하고 티베
트어를 사용하고 거대한 산맥으로 에워싸인 높은 고원에
터전을 이루어 생활하는 민족이다.
북쪽은 고도 5000m인 북부평원이 넓게 펼쳐있고 탕구
라산맥과 경계하고 남쪽은 히말라야 산맥과 경계하고 있
으며 기후는 건조하고 밤낮의 일교차가 크다. 유목민과
반농 반목민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지역을 탐사하러
나선 것이다.
9시 15분발 서안(산시성 시안)으로 떠나는 대한항공을
타기 위해 일찍 서둘러 집을 나선다.
대략 3시간 가량 지난 11시 30분 (서안 시간)에 서안
에 도착하여 먼저 점심 식사 후 화청지를 방문하고, 병
마용을 찾는다.
과거 8년 전에 다녀간 곳으로 이번에는 그때의 글(중국
시안의 역사를 찾아서)로 대신 하려 한다.
사후에 본인을 지키는 병사를 흙으로 빚어 만든 인형같
은 것으로 토용이라 하는데 한무제 때 철저히 파괴 하
였다고 한다. 우연히 발견되어 다시 조각을 맞추어 세
워 놓은 것이다. 정말 웅대하고 광활한 유적지요, 세계
문화유산에 들어있는 것은 당연한 사실,
아직 일부만 발견하고 전시시키는 것이니 얼마나 더 광
활하게 묻혀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단다. 전에 이미 관찰
한 곳이라 감흥이 반감한다.
저녁식사 후 라마다호텔에서 여장을 푼다.
이튿날 5시 기상하여 티벹으로 가기위해 서안비행장으
로...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는 항상 출발 서너시간 전부터 움
직이어야 한다. 3시간 걸려 티벹 라싸 공고르공항에 11
시 30분 도착한다.
라싸(拉薩; 우리식 발음은 납살이나 중국어로는 라싸가
됨)는 라싸강을 끼고 히말라야산맥 뒤쪽 3650m 고지에
있는 도시로 7c 토번의 수도였으며 그 후 몽골과 청나
라의 간접 지배하에 있다가 중화인민공화국의 자치주로
예속되고 만다.
티베트의 기본고도는 라싸의 3650m 이상으로 라싸가
최저 기본 베이스가 된다.
그러한 티벹의 중심도시 라싸에 처음 발을 디딘다.
고도가 3650m라고 하지만 아직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알룽창포강을 따라 조성된 공고르공항에 내리니 마중나온
가이드가 하따(賀達)를 목에 걸어준다. 티벹은 손님을
환영한다는 뜻으로 명주로 된 천을 목에 걸어주는데 이
를 하따라고 한다.
차를 타고 라싸로 들어가는 길 옆으로 황량한 사막같은
산들이 보인다. 길 옆에는 그래도 나무들을 간간히 심
어놓았지만 조금만 벗어나도 허허벌판, 벌거벗은 회색
산에 작은 풀과 낭독초라는 독초가 퍼져있다.
길 옆 강가에 조성된 평지에는 티베트 주식인 짠빠의
원료가 되는 보리를 경작하는 농지가 조성되어 있었다.
1시간 이상 달려와 다다른 라싸.
티베트 장족이 중국에 450만명 흩어져 살고 있으며 티베
트에만 300만, 라싸에 50만이 모여 산단다. 라싸는 티베
트에서 제일 살기좋은 곳이지만 매우 건조하고(티베트
전체가 몹시 건조함) 비는 6~9월에 집중되고 겨울은 강
한 바람으로 인해 더 건조하다고 한다.
일교차가 심해 연교차보다 더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나.
공기 중 먼지가 적어 태양광이 직접 내려쬐고 1일 10시
간 년 300일 태양이 내려쬐고 있단다. 6월의 최저 기온
이 10도, 최고 25도이나 실제 최감온도는 최저보다 더
낮게 느껴진단다. 도착한 날의 낮 기온도 꽤나 높아 봄
옷을 입고 간 나에게 낮은 따가운 느낌, 그러나 그늘은
서늘하다.
우선 달라이라마의 여름궁전 노블랑카로...
보석정원이라는 이곳은 녹음이 우거지고 꽃이 피어 있는
궁전으로 7대 달라이라마가 먼저 지었고 14대 달라이라
마가 지내다 1959년 인도로 망명하였단다.
노 블 랑 카 정 문
7대 달라이라마가 지낸 궁
7대 달라이라마가 지낸 궁
1958년 티베트 동부 캄과 암도지역의 무장봉기로 12만
명이 학살되고 6000개의 사원이 피괴되었단다.
정원에서 웨딩촬영 중인 한쌍
1959년 3월 18일 중국군이 노블랑카를 향해 기관총과
박격포를 쐈으나 티베트인들은 물러서지않고 몸을 방패
삼아 달라이라마를 인도 다람살라로 탈출시켰다고 한다.
이 사고로 87,000명의 티베트인들이 쓸어져 갔단다.
14대 달라이라마가 거처하던 궁
그런 아픈 역사를 지닌 노블랑카를 뒤로 하고 티베트의
중심사원이자 순레자들의 명소인 조캉사원(大昭寺)으로
향한다.
여행객들에게 포탈라궁이 티베트의 상징이라면 티베트인
에게는 조캉사원이 제 1의 성지이다.
조캉사원이 들어선 곳은 원래 늪지였는데 송첸캄포의
제 1왕비 네팔왕비 브리쿠티 공주를 위해 지었다고 한
다. 완성된 조캉사원에는 브리쿠티공주가 가져온 석가
모니 8세 상을 모셨는데 훗날 문성공주가 가져온 석가
모니 12세상과 맞바꾸어 놓았다 한다.
조캉사원의 명칭은 티베트어로 "조워(석가모니불상)의
집"이란 뜻이라 한다.
사원 2층에서 남코르를 따라 도는 것으로 한바퀴 돌면
전생의 죄를 씻을 수 있단다.
금정에 올라 바코르(Barkhor;팔각가)를 바라보면 오체
투지하는 티베트인들이 북적인다는데 우리가 갔을 때는
별로 없었다. 조캉사원을 나와 사원 주위 바코르를 한
바퀴 도는데 그곳에서 오체투지하는 사람을 보았다.
바코르는 순례길로서만 의미있는 곳이 아니란다. 오랫동
안 차마고도를 통해 들어오는 교역품이 대규모로 거래되
던 무역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날이 쨍쨍하여 걷기가
힘들다.
과거 청나라 주재관
예약된 호텔로 들어오니 모두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우리 일행은 60대 초반 부부가 2쌍, 60대 중반 부부 한
쌍, 70대 중반 남자 둘, 모두 8명으로 구성된 팀이다.
라싸 공고르공항에 도착하여 이곳에서 파는 고산증약을
사서 복용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종일 고산에서 움직여
서 그런지 저녁이 되니까 맥을 못추는 사람이 셋이나 되
었다.
내가 준비한 아세타졸(다이아막스)를 조금씩 나누어 주었
다. 그리고 우리도 반알씩 하루 2번 복용하기로 하였다.
우리보다 젊은 사람들이 더 고생을 하니까 은근히 겁이
난다.
내일을 위해 오늘은 일찍 취침하련다.
한가지 빠졌는데 중국의 유화 정책으로 티벹의 부동산값
이 천정부지로 올라 웬만한 티벹사람들은 한집에 차를 두
대씩 가지고 있단다.
복장이 왜 그리 꾀죄죄하냐고 물으니 현세를 중요시하지
않고 내세를 위해 현세는 고행을 해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잘 닦지도 않는다고 한다.
(2019년 5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