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란 수박 겉핥기-⑦에베소(Ephesus)
마리아의 집에서 머지않은 곳에 고대 도시 에페소가 있다. 현재는 가까운 곳에 셀주크라는 마을이 형성되어 있으나, 고대의 에페소는 항구도시로서 바닷가에 바로 이어져 도 시가 형성되어 있었다. 대리석으로 된 도로가 바닷가에서 원형극장까지 곧바로 이어져 있었으나 토사의 유출로 바 닷가가 메꾸어지고 늪지가 생겨 모기가 번식하므로서 모 기에 의해 도시가 황폐해졌다 한다. 물론 지진에 의한 피해도 많았겠지만 모기에 의한 말라리 아 때문에 병사하는 사람이 많아지니까 저주받은 도시라 하여 차츰 떠나게되니 도시가 빌 수 밖에.. 도시의 형성 년대는 B.C 1500년 이상 되지만 생략하고 B.C 3c∼4c 이후 알렉산더대왕의 부하 리시마쿠스가 현 재의 장소에 도시를 세우기 시작하였고 다시 페르가몬왕 이 버가모에서 이곳 에페소로 도읍을 옮겨 발전하다가 3대왕때 로마에 자국을 헌납하여 로마제국 아시아 속주의 수도가 되었다. 또한 에페소는 실크로드의 종착지로 거 대한 무역항이었다. 동서양 모든 문물의 집산지요, 많은 대상들의 집합소가 되었으니 큰 무역항이 안될 수 있었 겠는가? 오죽하면 안토니우스가 크레오파트라에게 여러번 이곳에 서 보물을 사 주었다지 않는가? 우리는 도시의 뒷쪽에서 부터 관찰하기 시작하였다. 입장료를 받는 문 바로 바깥 주차장 옆에는 성경에 나오 는 누가(Luke)의 묘가 있었다. 묘소를 지나 입구에 들어서면 나타나는 평원이 귀족들의 생활공간으로, 오데온(원형 소극장으로 귀족들의 토론 혹은 간단한 연예활동을 하던 곳)을 먼저 만나게 되고 그 앞에 넓게 차지한 아고라(시장터)를 보게된다. 여러 대리석 기둥들과 불을 보관하던 곳을 지나 한참을 가면 귀족들의 주거지가 있고 그 곳에서 셀수스도서관까 지 쭉 뻗은 길을 만나는데 이 길을 크레테스 거리라 한다. 셀수스도서관은 쥴리우스 아퀼라가 그의 아버지 셀수스를 기리기위해 지은 것으로 셀수스는 이 지역 총독으로 부임 해 통치하였으며 이곳에서 생을 마쳤다 한다. 이 도서관에는 수천권의 두루마리 책이 소장되어 있었으 나 262년 코트족의 침략으로 소실되었다 한다. 셀수스도서관 앞에는 커다란 목욕탕이 있었고 목욕탕의 하수(下水)는 공중변소를 통하게 수로를 만들었으니 이것 이 바로 수세식 화장실이 아니겠는가? 셀수스에서 왼쪽 직각으로 난 길이 원형극장까지 미치는 데 이 거리를 대리석거리라 한단다. 이 거리 중간 바닥에 여자의 그림과 발바닥, 방향표시 등 이 있는데 이는 비잔틴시대의 창녀촌을 가르키는 표시라 한다. 그 아랫쪽에는 크나 큰 아고라 터가 자리 잡고 있었다. 원형극장은 25000명을 수용할 수 있었고 기하학적 설계는 전에 소개한 다른 원형극장과 마찬가지이다. 원형극장 정면 앞으로 난 대리석 길은 부두에서 바로 올 라오는 길이란다. 주위의 여러 고대 도시들 보다도 제일 번성하였고 제일 규모도 컸으며 발굴도 제일 많이 하여놓 은 것 같았다. (2005년 9월 7일)

누가(St.Luke)의 묘
입구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만나는 목욕탕
오데온
오데온 앞 거리
길 옆에 쓸어져 있는 조각(승리의 여신 "니케"라고 하네요.나이키라고도 하지요.)
크레테스거리
크레테스거리
트라야누스황제의 분수대
귀족들의 전용도로(모자이크타일로 깔려있다)
셀수스도서관 앞에 있는 목욕탕
(뜨거운 물의 통로로 쓰인 토관들이 그대로 있다)
셀수스도서관 앞의 목욕탕(앞에 있는 구멍이 불을 때는 곳)
목욕탕 옆에 있는 공중화장실
(일을 보며 상대방과 이야기 할 수 있도록 앞에 간이의자가 있었으며
앞에 수로가 따로있어 손을 씻을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하드리아누스 신전(정문에 운명의 여신 리케가 아치형으로
조각되었고 문 안쪽에 양손을 벌린 메두사가 조각되어 있음)
셀수스 도서관
셀스스도서관
셀수스도서관 앞에서 단체로...
필자도 한컷
원형극장 쪽에서 촬영
(대리석거리 오른쪽이 아고라,멀리 셀수스 도서관)
원 형 극 장
옛 부두 쪽에서 원형극장을 배경으로
창녀촌 표시(발은 연령제한,구멍은 돈 표시,
그림은 여자가 있다는 곳,화살표 표시로 오라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