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터키)

터키란 수박 겉핥기-⑧아르테미스신전과 요한교회

야정(野停) 2005. 9. 28. 15:42

            고증에 의해 복원된 가상 아르테미스(Artemis) 신전

에페소는 기원 전부터 이미 서아시아에서 상업의 요충지 로 번성하여 부유한 도시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으나 이곳 을 더 유명하게 만든 것은 아르테미스 신전이다. 이 신전은 당시 최고 부자였던 리디아왕 크로이소스(B.C 560∼B.C 546)때 세우기 시작하였다. 높이 18m 의 이오니아풍 백색 대리석 기둥을 127개나 사 용한 이 신전은 완성하기까지 120년이 걸렸다 한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B.C 5c경)도 이곳을 방문하여 에집트 기자의 피라미드에 떨어지지 않는 걸작 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한다. B.C 356년 정신병자의 방화로 소실되었는데 "어차피 나 쁜 일을 하려면 후세에 까지 알려질 수 있는 악행을 저 질러야 한다." 고 생각한 헤로트라투스란 자의 소행이었 다 한다. 그 후 재건을 위해 에페소 사람들이 발벗고 나 섰는데 마침 아세아 원정길에 올랐던 알렉산더대왕은 완 성 중에 있는 아르테미스 신전의 장대함과 아름다움에 마 음을 빼앗겨 "만일 에페수스인들이 이 신전을 나의 이름 으로 세워준다면 모든 비용을 내가 대겠다"고 하였으나 다른 나라 신을 모시는 것이 옳지않다고 하며 거절하였다 한다. 그 당시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이 폭 30m, 길이 69m, 높이 10m 정도로 기둥 58개를 사용하였으나, 여기는 폭 60m, 길이 120m, 높이 18m로 127개의 기둥을 순도 높 은 백색대리석만 사용하여 파르테논의 4배에 가깝게 지었 으니 그 웅장함과 화려함이 오죽 하였겠는가? 아르테미스는 제우스와 레토의 딸인 처녀 사냥꾼으로 산 과 들에서 사슴을 쫓는 활의 명수라 하며 다산, 처녀,들 짐승 등의 신으로 추앙 받았다 한다. 이는 A.D 3c 경 코트족의 칩입으로 파괴, 방화되고 말았단다. 그 중요한 자제들은 이스탄불 소피아성당과 요한교회 등 을 짓는데 사용하여 그 영화를 지금은 흔적만으로 만족해 야 한다. 이 신전은 기둥 하나 바치는 처마도리 무게 만도 24t의 무 게가 나가는데 그 당시의 장비로 어떻게 그러한 무게의 대 리석을 기둥높이 17.65m까지 들어 올릴 수 있었을가? 이것이 불가사의로 남아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것 이다.(7대 불가사의는 일반적으로 다른 것을 지칭하는데 누가 이것도 그 속에 집어넣었나 보다) 다음에 고대 서아시아 7대 교회 중 하나인 요한교회를 방 문하였다. 사도 요한이 마리아와 함께 에페소로 와서 바울의 뒤를 이 어 전도에 힘을 쓰다가 밧모섬으로 귀양가게 된다. 그곳에서 요한복음과 게시록을 썼다하며 그의 전도를 기 리고자 그의 무덤 위에 교회를 세우게 되었단다. 그의 시 신은 로마 교황청으로 옮겨지고 현재는 빈터만 남아있지 만 그래도 무덤자리는 표시되어 있었다. 요한교회에 도달하면 박해의 문을 먼저 통과하게 되는데 에페소 원형극장에서 야수의 먹이로 바쳐진 기독교인들의 한이 서려서인지 기독교가 공인되자 박해를 당했던 경기 장의 대리석들을 부수어 박해의 문을 지었다한다. (2005년 9월 7일)
아르테미스 신전 편

아르테미스 신전터(현재 기둥 하나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아르테미스 신(가슴에 있는 유방 같은 것은 소의 고환을 표시한 것)


신전에서 나온 유물


신전에서 나온 유물

요한 교회편

박해의 문

현재 남아있는 요한교회 모습


요한이 묻혀 있었던 곳(교회 내부였음)

요한교회 모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