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에 있는 부석사(浮石寺)
두번째 찾은 곳이 浮石寺. 영주의 부석사는 큰 법당인 無量壽殿(국보 18호)과 무량 수전 앞에 서있는 석등(국보 17호), 오른쪽 산위에 있는 조사당(국보 19호),무량수전 안에 있는 소조여래좌상(塑 造如來座像)(국보 45호), 조사당의 벽화(국보 46호),등 국보급이 5점이나 있고 보물이 4점이나 있다. 부석사는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의상대사와 중국여인인 선묘의 사랑이야기가 창건 설화로 전해오고 있다.의상대사가 당나라에 유학할때 선묘라는 여인이 의 상을 사모하다 의상이 신라로 돌아가자 바다로 뛰어들어 자살하였다 한다. 의상이 부석사를 창건할 때 도적들(혹은 토속신앙을 믿는 사람들)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선묘의 영혼이 도둑들 앞에서 큰 돌을 공중으로 들어올려 도둑들이 도망가고 그 자리에 부석사를 창건할 수 있었다 한다. 무량수전 옆에는 浮石이 놓여있고, 절 오른쪽에 선묘각이 라는 작은 사당도 있다. 의상은 당나라가 신라를 침략한다는 소식을 듣고 귀국하 여 이를 왕에게 알리고, 또한 화엄교학을 펴기위해 이 절 을 창건,화엄사상의 발원지가 되었다. 무량수전 글씨는 공민왕의 친필이라 한다. 부석사에서 무량수전이나 안양루, 밑 석축들이 모두 방향 을 달리하여 배열한 것이 특이하다. 또한 무량수전의 기 둥은 중간부분이 불룩한 나무기둥으로 우리 건축양식에서 흔히 볼수있는 배흘림 수법을 사용하였고 특히 주불인 소조불 좌상(국보 45호)은 서쪽에 안치하여 동쪽을 바라보게 한 아미타불상이다.(아미타불은 서방세 계를 관장하는 부처이기 때문에 서쪽에 안치한다.) 조사당 내부에는 이 절을 창건한 의상대사의 진영이 봉 안 되어 있고 처마 밑에 자라는 선비화(禪扉花)는 의상 의 지팡이로 쓰이던 나무가 자라고 있으나 사방을 울타 리로 막아 보호하고 있어 촬영하기가 힘든다. 조사당 오른쪽 자인당에는 石造如來坐像(보물 226호)이 있는데 수리중이라 보지 못하였다. 무량수전 오른쪽에 삼층석탑(보물 249호)이 있고, 고려 각판(보물 735호)은 따로 보존각에 보존되어 있고 입구 에는 당간지주(보물 255호)가 서 있다. 국보인 무량수전과 소조여래좌상에 대하여 간단하게 이야 기하여 보자. 우리가 학교 다닐 때 부석사 무량수전을 최고(最古)의 목 조건물로 기억하였었으나 그후 안동 봉정사 극락전(국보 15호)이 100년 이상 전이라는 것이 밝혀졌고, 소조여래 좌상은 흙으로 빚은 불상 중 가장 크고 오래된 작품으로 고려 초기 불상의 형태를 갖추어 그 가치가 매우 크다한 다. 남들은 부석사를 여러번 다녀 왔다지만 나는 처음으 로 방문한 곳이라 느낀 점 또한 남보다 두배로 많았던 것 같다. (2005년 7월)
태백산 부석사 일주문(봉황산 밑인데 태백산이라 썼음)
부 석 사 전 경
부석사 일부(안양루와 뒤 무량수전)
배흘림수법으로 된 기둥
소조여래좌상(국보 45호)
소조여래좌상(국보 45호)
무량수전으로 들어서는 安養樓(안양루로 들어서면 극락이라 한다)
석등(국보 17호) 앞에서8.강경문댁(이길영))과 유제구댁(이한숙)
삼 층 석 탑(보물 249호)
조사당(국보 19호)(망을 씌워 놓은 곳이 선비화가 있는곳)
浮 石
조사당 벽화(국보 46호)
조사당 벽화(국보 46호)
조사당 벽화(국보 4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