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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에서의 맛기행과 함께 한 문화탐방

야정(野停) 2009. 7. 11. 08:56
6월 27일 중대 약대 12회 동기들은 전남 강진으로 여행
을 떠나기로 하였다.
강진에는 초당약품에서 조성하여 놓은 산림이 있고 또한
연수원을 만들어 놓아 그곳을 방문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김찬구 동기는 초당약품 오너의 아들로 한 때 초당약품
을 좌지 우지하던 친구라는 것을 우리는 다 잘 안다.
현재는 10여 년 전에 초당약품을 떠나 아프리카 케냐로
약품을 수출하고 현지 공장도 운영하고 있다 한다. 
오랫만에 고국에 돌아온 김사장은 친구들을 초대하고 싶
다 하여 연수원을 방문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김사장이 준비하여 준 고급 리무진 버스를 타고 
떠나기만 하면 된다.
하여 여러 친구들에게 좋은 취지를 이야기하고 참석하기
를 독려하였지만 토요일 약국문을 닫을 수가 없어 참석하
지 못하는 친구가 더 많았다.
가까스로 서울서 21명, 지방에서 개인 참석이 5명, 도합
26명으로 결정되었다. 27일 새벽 7시 반에 양재역에 도
착하니 고급 리무진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김구 대한약사회장은 지방 약사회에 연사로 나서게 되어
있어 친구들의 나들이에 참석치 못하고 차에서 먹을 수있
는 간식거리를 1봉씩 담아 전달해 주고 돌아갔다.
19명으로 이루어진 일행은 경부고속도로로, 죽전 정류장 
에서 2명을 마자 태워 21명 출발.
(문혜성, 조택상, 박영찬, 원정팔, 최병호, 이효훈, 김
정룡, 노덕재, 최덕구, 이종례, 전희자, 임옥순, 정기 
순, 정부현, 황순오, 서태옥, 문병수, 김동성, 염윤기,
박광자, 이정구)
지방에서는 구례 김종만, 천안 신관호, 신명희, 논산 정
규택, 서산 최덕현이 참석한다고 한다.
버스가 넓으니까(28인승) 넓게 앉아 편하게 여행할 수있
는 것이 좋았다.
경부고속도로에서 천안 논산간 고속도로로 들어서서 정안
톨게이트에 정차. 아침을 하지않고 나온 친구들을 위해
휴게소 아침식사 코너로 가서 아침식사를 하였다.
식사와 잡비들어 가는 것을 위해 김찬구사장이 나에게  
미리 예상액을 송금시켜 주었기 때문에 내가 대신 계산
을 하였다. 버스는 계속 호남고속도로로 가서 광주 지나
강진에 도착하니 1시.
이번 기행은 김찬구사장이 스폰하였지만 모든 기획은 내
가 세웠다. 우선 해태식당으로...

강진읍에 있는 해태식당
여행 전문인들이 앞 다투어 소개하는 남도의 유명한 해태 식당에 도착하니 김찬구사장이 미리 나와 기다리고 있었 다.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식당으로... 제각기 취향대로 소주, 막걸리, 복분자 등으로 목을 축이 며 정담을 나눈다.

식사가 끝나고 목적지인 초당연수원으로 향한다. 강진에서 남쪽 마량으로 가다가 관산쪽으로 좌회전하면 산이 나오는데 대략 300만 평에다 조림사업을 하였단다. 관산쪽으로 10km 정도 산을 넘어 가다가 관산이 보이는 언덕에서 좌측으로 초당연수원이라는 표지석이 보이는 곳에서 좌회전. 그곳으로 들어서서 대략 몇 백m 가면 산 속 아늑한 곳에 자리잡은 4층 건물이 연수원이다. 연수원 뒤로 관리인의 집이 있고 그 옆으로 오너를 위한 아담한 휴식처가 따로 있으며 잔디를 심은 운동장과 전부터 사용하였던 연수원 작은 건물이 운동장 끝 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원은 초당 조림지이고 점은 연수원 자리

초 당 연 수 원

연 수 원 앞 에 서
이곳은 나중에 지도를 찾아보니 강진군 칠량면 칠량산으 로 되어 있었다. 우리는 방 배정을 받고 산을 돌아보기로 하였다. 산 속으로 들어서니 편백나무와 백합나무 등이 식재되어 있었고 곳곳에 버섯을 재배하고 있었다. 서울에서는 비가 오지 않았는데 이곳에는 아침에 비가 왔다 한다. 그래서 인지 얼마나 후덥지근한지 모르겠다. 산에 나있는 임도 따라 가보는데 까지 가보기로 하였다.

임도로 가면서

임도로 가면서

수종에 대해 설명하는 김찬구사장

수종에 대해 설명하는 김찬구사장
저녁때까지는 대략 3∼4시간의 여유가 있어 산을 산책하 며 피촌치드를 마음껏 들어 마셔 본다. 임도를 따라 걷다 보니 참취, 더덕이 지천이다. 참취는 잎이 세어서 먹을 수 없고 고사리는 그런대로 먹을 수 있 으나 개체수가 많지않아 따지 않고 더덕은 심심풀이로 여 러 뿌리 캤다.

더덕을 캐고 있는 친구들
다시 되돌아 올 때는 개울진 다른 길을 택해 천천히 걸 어 왔다. 연수원 옆에 있는 운동장가에 정자를 만들어 놓 아 그곳 그늘에서 땀을 식히며 환담을 나눈다. 김찬구 사장 와이프가 열심히 수박을 나른다. 갈증난 김에 몇 쪽을 먹었더니 얼마나 시원한 지? 연수원 앞 울타리에 낮은 관목을 심었는데 쥐똥나무 같은 꽃이 봉우리를 맺고 있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광나무라 한다. 쥐똥나무나 광나무 둘 다 물푸레나무과이고 쥐똥나무는 5∼6월에, 광나무는 7~ 8월에 꽃이 피며 광나무는 경남, 전남 지방에 많이 자란

다 한다. 쥐똥나무는 남정목, 광나무는 여정목이라 하는 것을 모두 남녀 보양제로 쓰인다고 하고...

광 나 무
숙소로 들어와 간단히 샤워를 하고 누워 조금 쉬었다. 저녁식사는 마량 포구로 가기로 구두 약속 되었었는데 4 층 휴게실에서 저녁식사를 준비한다고 한다. 천안에서 신관호와 신명희가 따로 기차로 내려 온다고 하 여 그들이 도착한 다음 7시부터 저녁식사를 시작하였다. 회는 마량포구에서 배달시켰고 소주, 막걸리, 복분자, 포 도주 등으로 식성에 맞추어 마음대로 고르게 하였다.

연수원 4층에서 바라 본 천관산

연수원 4층 식당에서의 저녁 만찬
나는 컨디션이 그리 안좋은 것 같아 식사 끝내고 바로 옆으로 나가 맑은 공기를 마시며 몇몇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랫만에 별들을 바라보며 별똥별 이야기도 나 누며...

연수원 4층 식당 옆에 있는 노천 옥상에서
실내에서는 여전히 몇 순배 술잔이 돌고 흥이 난 친구는 노래방 기계를 틀기 시작한다. 밖에서는 담배나 피우며 이야기 꽃을 피우고 실내에서는 노래 대결로 마냥 흥을 돋구고... 10시 넘어 2층에 있는 숙소를 찾아 가는 친구들이 늘기 시작한다. 숙소에 들어와 바둑과 장기를 두는 친구들도 있고 그냥 취침하는 벗들도 있었다. 아침 일찍 기상해 출발 준비하고 8시 아침 식사를 한다. 역시 관리인과 김사장 와이프가 고생한다. 9시 출발.

연수원을 떠나기 전 기념촬영
지금부터 문화 탐방을 시작하기로... 우선 김영랑 생가를 방문하기로 하였다. 북도에 김소월이 있으면 남도에 김영랑이 있어 대적이 된 다. 우리나라 서정시인의 대표적인 사람들로 오늘은 김영 랑의 생가를 방문하기로 한 것이다. 영랑 김윤식은 1902년 500석지기 부농의 아들로 태어나 서울 휘문의숙을 거쳐 동경 청산학원 영문과를 다녔으나 관동대지진으로 귀국하고 만다. 휘문의숙 시절(1919년) 독립선언문을 구두 안창에 숨겨 고향 강진으로 내려와 독립운동을 주도하다 대구형무소에 서 6개월 복역하고 1945년 해방후에는 대한 독립 촉성회 강진군분회 단장으로 활약하였고 초대 국회의원으로 출마 하였으나 낙방하고 1949년 공보처 출판국장으로 7개월 역임하였다 한다. 1950년 6.25때 파편을 맞아 48세로 생을 마쳤다. 영랑은 주로 자기가 살던 집 주위에서 시의 소재를 거의 택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 랑 생 가 전 경

"모란이 피기까지는" 시비

생가 입구에 들어 선 친구들

시의 소재가 된 우물(새암, 샘)

영 랑 초 상 화
생가로 들어가는 길에 구부러진 돌담이라던가, 대문안 우물, 안채 오른쪽 장독대와 감나무, 모란꽃밭, 꽃밭에 서 더 오른쪽으로 가면 북을 두드리며 시를 읊고 쓰던 사 랑채가 있고 그 앞에 영랑이 19살에 직접 심은 은행나 무도 소재가 되었으며 안채 뒤편 언덕에 있는 대나무숲 과 동백나무들이 있는데 영랑의 데뷔작 "동백잎에 빛나 는 마음"의 모태가 되었던 곳이다. 우리 국민들의 서정적 정서를 너무 아름답게 표현한 사람 으로 더욱 친근감이 있고 우리 앞세대에 살았던 사람이기 에 더 더욱 애잔한 감정이 나의 몸을 훑는다.

사 랑 채

사 랑 채앞 꽝 꽝 나 무

< 사 랑 채

사랑채 앞을 거닐며

안 채 를 배 경 으 로
다음으로 찾아 간 다산초당. 다산초당은 만덕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데 만덕산은 차가 많이 자생하는 산이라 하여 다산이라는 별명이 있고 이 다산에 있는 초가집이라 다산초당이라 하였다 한다. 정약용은 정조가 죽자 신유사옥이란 옥사로 귀양가게 된 다. 우선 포항으로 갔다가 그 해 강진으로 이배되어 이 곳 저곳 머물다가 나중에 해남 윤씨 도움으로 다산초당으 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해남 윤씨 윤두서의 손녀가 정약용의 어머니이다) 18년 유배 생활 중 10년을 다산초당에서 후학을 가르치 며 집필에 전념하여 목민심서와 같은 유명한 저서도 당시 에 완성하였다 한다.

다 산 유 물 관 앞

유 물 관 옆 에 서

버스에서 내리면 먼저 유물전시관을 들러 보고 뒷산 산기 슭로 20여 분 걸어 오르면 초당을 만나게 된다. 실은 초당이 아니라 와당인데 이는 보존회에서 잘못 복원 하여 그리 되었고 다시 초가집으로 고쳐 짓는다고 한다. 오르는 길 중간에 두충나무를 심어 그 가운데로 산책로를 만든 것이 낭만적인 향기가 물씬 품겨 나오는 것 같았다. 다산초당 양 옆으로 동암, 서암이라는 집이 있고 뒤켠에 다산선생께서 직접 수맥을 잡아 만든 약천(藥泉)이 있는 데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약수라 한다. 초당 앞에 "차를 끓이는 부뚜막"이란 뜻을 가진 다조라는 바위돌이 있고 옆에는 직접 연못을 파서 잉어도 길렀으며 돌을 쌓아 섬도 만들어 연지석가산이라 불렀다. 유배생활이 풀려(해배;解配) 떠나기 전 바위에 정석(丁 石)이라는 친필을 남긴다. 이 4가지를 또한 다산 4경이 라 부른다나. 우리나라 사람들 "어디 몇경" 해가면서 왜 그리 묶기를 좋아하는지? 제자들이 묶던 서암과 다산이 묵던 동암이 다산초당 양 옆으로 따로 지어져 있었다. 다산초당이란 글자는 추사 김정희의 글자를 집자하였으며 동암에 있는 보정산방(寶 丁山房)은 추사(완당)의 친필을 모각(模刻)하고 다산동 암(茶山東庵)은 다산의 글씨를 집자한 것이라 한다. 더 오른쪽에 있는 천일각은 후대에 세운 건물로 흑산도 로 유배간 정약전 형을 그리워하던 곳이란다. 멀리 강진 만 구강포를 바라다 보면 한폭의 그림같다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다 산 초 당

다산초당 툇마루에 앉아

다산초당 툇마루에 앉아

서암에 있는 다성각 (완당이라는 호가 있는 것으로 보아 김정희 글씨 같음)

천 일 각

천 일 각 옆 에 서
이곳에서 1km 동쪽으로 넘어 가면 고려말 요세스님이 귀 족불교를 서민불교화하기 위해 백련결사를 일으킨 유명한 절이 있다. 고려말 왜구의 침략이 심해 한 때 텅 비어 있기도 했던 백련사. 주위에 있는 몇 천여 그루의 동백은 적으로 부터 보호 차 원에서 심은 것이 지금은 보호수로 지정될 만큼 문화적 가치가 높아졌다. 백련사는 고려시대 8국사를 배출하고 조선시대 8대사를 배출한 유명한 절이었는데 8대사 중 마지막 스님이 혜장 스님으로 다산이 유배생활 중 자주 차를 마시며 교우하였 다 한다. 물론 대흥사 초의선사도 교분이 있었고... 시간이 넉넉하면 백련사로 넘어가련만 여유가 없어 다시 되돌아 내려 온다. 다산초당 바로 밑에 다산의 제자 윤 종건의 묘가 있는데 양쪽에 세워진 동자상이 특이하다. 혼유석 앞에 세워진 비석에는 만(卍)자만 새겨져 있었는 데 어떤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윤종건 묘에 세워져 있는 동자상

혼유석 앞에 있는 만(卍)자 비석
초당을 오르는 중간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는데 민박이나 음식점들로 형성된 마을 같다. 다시 버스로 돌아와 해남군 고산 윤선도 유적지로 향한 다. 오우가며 어부사시사 등 가사문학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윤선도 선생의 문중 종택을 찾아 보는 것이다. 원래 해남 윤씨 종택은 고산의 4대 조부 어초은 윤효종 이 지었으나 이를 녹우당(綠雨堂)이라 불리는 것은 조선 17대 효종이 윤선도에게 지어 주었던 수원집을 헐어 배 편으로 옮겨 이곳 사랑채로 들어선 후부터이다. 녹우당이란 당호는 은행나무 잎이 바람에 떨어지는 소리 가 비오는 것 같다하여 불렸다 하나 실은 비자나무숲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비오는 것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 이라 한다.

고 산 유 적 지

유적지에 들어 서면 오른쪽으로 고산유물관이 있는데 그 안에는 윤씨 문중의 가보가 모두 집결되어 있다. 그 중 증손자 윤두서가 그린 자화상은 국보 240호로 지정되어 이곳에 복사본만 전시되어 있고 산중신곡집이란 시집과 몇 개 서적이 보물 482호, 해남 윤씨 가보(화보집 등) 외 동국여지도, 일본지도가 보물 481호, 노비문서가 보 물 483호로 지정되어 있는 곳이다.

국보 240호인 윤두서의 초상화
안채, 사랑채(녹우당)의 담을 끼고 산으로 오르면 천연 기념물 241호인 비자나무숲이 있는데 이는 산의 돌이 보 이면 마을이 가난하여진다 하여 일부러 조상이 심었다고 한다. 우리는 시간이 촉박하여 비자나무 숲까지는 가지 못했다.

녹 우 당

녹 우 당
다음은 점심시간. 어차피 문화탐방을 위한 기행이지만 맛기행도 빼놓을 수없 는 주요 일정이다. 요즈음 민어가 제철이고 남쪽에서 민 어하면 목포 영란식당을 빼놓을 수 없단다. 목포역을 지나 목적지 도착하니 1시 20분. 미리 예약을 하였지만 우리 예약석 외 나머지 자리는 꽉 차 빈 자리가 없었다. 우리는 예약석에 앉아 민어회와 약 주로 마지막 만찬을 즐겼다.

목 포 영 란 식 당
이곳에서 김찬구사장은 와이프가 가져 온 자가용으로 상 경하기로 하고 우리는 그대로 버스로 상경하기로... 뜻깊게 여행하고 좋은 음식으로 입맛을 즐겁게 하고 아름 다운 모임을 있게 하여준 김찬구 동기에게 진심으로 감사 의 마음을 전하며 졸필을 끝낼가 한다. (2009년6월 27∼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