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국내)

호미곶, 양동마을, 옥산서원

야정(野停) 2008. 10. 1. 20:38

내연온천 숙소에서 송이버섯 백반으로 아침식사를 끝 내고 호미곶으로 향했습니다. 포항시 남구 대보면 대 보리에 있는 호미곶은 한반도의 최동단에 위치하여 지형상 호랑이 꼬리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고산자 김 정호는 대동여지도를 만들면서 일곱번이나 답사 측정 한 뒤 우리나라에서 가장 동쪽임을 확인하였다 합니 다. 이곳에는 국내 최대 규모의 호미곶 등대와 국내 유일한 등대박물관이 있습니다. 포항에는 연오랑(延烏郞)과 세오녀(細烏女)의 부부이 야기가 설화로 남아 있느데 이들 부부가 일본으로 건 너가자 신라의 해과 달이 빛을 잃었다 합니다. 이는 이들 부부가 일월의 정기와 관련이 있음을 암시 하는 것으로 세오가 짠 비단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냈 더니 해와 달이 전과 같이 되었다 한다. 신라에서는 그 비단을 어고(御庫)에 간수하고 국보로 삼았으며 그 창고를 귀비고(貴妃庫)라 하였다고 삼국 유사(三國遺事)에 적혀 있다고 합니다.




이곳을 떠나 영천방향으로 가서 안강에 있는 양동마을 과 옥산서원을 들르기로 하였습니다. 양동마을은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에 있는 민속마을로 써 경주 중심 시가지에서 포항쪽으로 16km 떨어진 형 산강의 중심에 있으며, 전에는 월성군에 포함되어 있 어서 월성 양동 마을이라고 하였으나 경주에 편입되면 서 경주 양동 마을이라고 합니다. 마을 내에는 국가 보물 3점이 있을 정도로(기타 문화재 는 생략) 고풍스럽고 오랜 역사가 깃든 마을로 경주에 서 흐르는 형산강이 마을을 서남방향으로 휘둘러 안고 흐르는 형상이라 합니다.(한문의 勿자 형상) 이 마을은 약 520 년전 손소(孫昭)라는 사람이 이 마을 에 살던 장인 유복하의 상속자로 들어와 정착하면서 월성손씨(月城孫氏)의 종가를 지어 번창하였고, 또한 손씨의 딸은 여강이씨 번(蕃)에게 출가하여 조선시대 성리학을 정립시킨 이언적(李彦迪)을 낳은 곳으로 두 문중이 번창한 곳입니다. 현재 월성손씨 40여 가구, 여강이씨 70여 가구 남아 있 다고 합니다. 손소의 아들 손중돈의 소유였던 관가정 (보물 442호)과 이언적이 경상감사로 재직할 때 지은 향단(보물 412호), 여강이씨 이언적의 종가댁 일부인 사랑채 부속건물인 무첨당(無添堂)(보물411호)이 그 중 빼어나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시간이 여유롭지 못해 대표적인 두 군데만 들렸는데 우선 서백당(書百堂). 중요 민속자료 23호로 지정되어 있는 이 가옥은 월성 손씨 종택으로 손소가 지은 집입니다. 그의 아들 손중돈과 그의 외손자 이언적이 태어난 곳 이고, 서백(書百)이란 하루에 참을 인자 백번을 쓴다는 고서에 나온 말이라 한답니다. 서백당을 송첨(松詹;소나무 처마)이라고도 한다네요.

다음은 이언적이 경상감사로 있을 때 모친의 병 간호를 하도록 중종이 지어 준 향단(香壇). 조선시대 중기 양반주택으로 두곳에 뜰을 두고 안채, 사랑채, 행랑채를 붙여 전체가 "興"자 모양을 이룬 독 특한 구성을 하였습니다. 원래 99칸이었으나 현재 50 여 칸으로 줄었고 대문의 위치도 무엇인가 공간배치 가 안된 것 같은 모습? 아마 줄일 때 변형을 준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특이한 가구(架構)의 모습

부엌 옆에 있는 저장실(땅에 놓지 않고 이층 저장실에 보관)

멀리서 바라본 향단

멀리서 바라본 향단

향단 건너 언덕에 있는 집
다음으로 독락당(獨樂堂). 옥산서원 찾는다고 지나쳐 가니 독락당이라는 집이 먼 저 나타납니다. 독락당은 옥산서원 뒤편에 있으며 회재 이언적이 벼슬을 그만 두고 고향에 돌아와 지은 사랑채 로 옥산정사(玉山精舍)라고도 합니다. 담장에 좁은 나무로 살을 대어 만든 창을 달아 대청에 서 창살을 통해 계곡 물을 보게 만들었습니다.이는 아 주 특별한 공간 구성이며 뒤쪽에 있는 계정(溪亭) 또한 자연에 융화시키고자 하는 의도를 잘 드러내주고 있습 니다. 독락당 계정 아래 개울에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계정의 풍류에 좀 취해 보았습니다.

독락당 안에서 계정을 향해

독락당 안에서 계정을 향해

독 락 당(옥 산 정 사)

계 정(溪 亭)

밖을 내다보게 만든 문살(계정 옆 담에 있느 것)
독락당을 나와 차를 돌려 옥산서원으로... 서원과 독락당은 계곡을 끼고 서로 반대편에 있는데 거리는 조금 떨어져 있는 위치인 것을 모르고 지나쳤 나 봅니다. 옥산서원은 조선 중종 명종 때를 대표하는 성리학인 동방오현(東方五賢) 중 한사람인 이언적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으로 1574년 사액서 원이 되었습니다. 대원군의 사원철폐 때 훼손되지 않은 47개 서원 중의 하나입니다. 서원 중심부인 구인당 정면에 걸린 옥산 서원의 편액은 원래 이산해의 글씨였으나 1839년 불에 탄 구인당을 새로 지으며 김정희가 다시 썼다 합니다.

옥 산 서 원 옆 모습

옥 산 서 원 ㅁ자 내부

이 언 적 신 도 비
서원은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지만 서원에 보관된 이언 적의 수필고본이 보물 586호로, 김부식의 삼국사기 완 본 9책이 보물 525호로, 기타 보물 2점이 더 있으며, 독락정이 보물 413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서원 안에 이언적신도비가 누각 안에 있는데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2008년 9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