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자는 우거질 촉자로 촉석은 모난돌이란 뜻이라 한다.
남강변 벼랑 위에 서있는 이 누각은 진주성 남쪽 장대
(지휘하는 사람이 올라서서 명령하던 곳)로서 장원루라
고도 하고 남쪽에 있는 장대라 남장대라고도 한다.
입구에 있는 김시민 장군 동상
남 장 대
문화유산답사회에서는 고려 31대 공민왕 때 세운 것이
라 하는데 23대 고종 때 세웠다는 학설이 맞을 것이다.
전쟁시에는 진주성을 지키는 지휘본부로 사용하고 평상
시에는 과거를 치르는 고사장으로 쓰였단다.
촉 석 루
임진왜란 때 두 번의 싸움이 있었는 데 1차 싸움에서
김시민장군이 이끄는 군대가 대승을 이루었다.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로 꼽히는 진주성 싸움이다.
남강가 벼랑 위에 장엄하게 솟아잇는 촉석루는 밀양 영
남루, 평양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누각 중 하나
이다. 남한 3대 누각에는 남원 광한루가 들어간다.
2차 진주성 싸움으로 진주성이 함락되자 왜적들은 촉석
루에서 자축연을 벌였다.
이 때 논개는 열 손가락에 가락지를 끼고 나와 왜장 이
와무라 로쿠스케(毛谷村六助)를 껴안고 남강에 몸을 던
져 자결한 곳이 의암이다.
의 암
촉석루는 1948년 국보 276호로 지정되어 있었으나
6.25 때 소실되면서 국보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나 국보
로 재 지정해 달라고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단다.
의암 있는데서 바라 본 촉석루
논개는 본래 양반가의 딸로 태어났으나 집안이 몰락하자
진주성싸움에서 전사한 경상우병사 최경회의 후처로 있
다가 최경회가 죽자 기녀로 위장하고 연회에 참석하였다
한다.
어떤 것이 맞는 것인지 모르지만 결과는 확실하게 맞는 것
이니 왈가왈부 할 필요는 없다.
촉석루 남강 쪽에 좁은 문이 있는데 그곳으로 내려가면
의암이라는 네모진 바위가 하나 보인다.
의암에서 바라보니 촉석루가 세워진 바위에 일대장강 천
추의열(一帶長江 天秋義烈)이라고 새겨져 있다.
"남강은 띠를 두르고 의로운 열정은 천년을 흐른다"
라는 뜻으로 논개의 충절이 남강과 더불어 영원히 흘러
갈 것이라는 뜻을 담고 있단다.
일 대 장 강 천 추 의 열
논개의 사당 의 기 사
남강가에서 본 촉석루
(2014년 5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