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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諸王)들의 신위(神位)가 모셔진 종묘(宗廟)

야정(野停) 2006. 9. 4. 21:04

토요일 오후 문화재 관리위원이시며 명지대에 계신 홍순 민교수님의 안내로 종묘를 관람하였습니다. 우선 세운상 가 12층에 올라 보니 서울시내에 이렇게 넓직한 공원이 있었는가 할 정도로 시원스러운 숲이 있어 마음까지 후 련하게 하여 주더군요.

     세운상가에게 내려다 본 종묘와 뒷쪽 응봉과 북악산
북악산 오른쪽으로 이어진 응봉이 남쪽으로 타고 내려 그 대로 여기 종묘 있는 곳까지 숲을 이루어 놓았으니... 평지에서 보이는 서울은 빌딩숲 속에 잠긴 삭막한 곳이라 는 생각 뿐이었는데 편견이었다는 것을 오늘에야 새삼 느 꼈습니다. 그리고 오늘 날씨가 후덥지근한데 그것도 제일 더운 오후에 약 45명에 가까운 동문가족이 참석하였다는 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종묘공원에는 파고다공원 에서 밀려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이 곳으로 모여 어른 들만의 문화를 형성시키고 있었고, 또한 곳곳에서 공연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종 묘 정 문
우선 종묘에 대해서... 종묘란 조선 태조 4년에 경복궁 오른쪽에 세워진(나중에 는 조금씩 증축하였지만) 왕과 왕비의 신위(神位)를 모신 사당입니다. 국가가 성립되어 궁궐을 지으면 중국제도를 본떠서 오른쪽에 종묘, 왼쪽에 사직단을 세워야하는 것으 로 되었습니다. 지금의 종묘는 1995년 12월 불국사, 석굴암, 해인사 팔 만대장경 판고와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습니 다. 종묘 정문에 들어섭니다. 다른 궁궐문들과 마찬가지로 가운데 문이 있고 양 옆에 작은 문이 있는데 우리는 옆의 작은 문으로 들어 갔습니 다. 가운데 문은 신들의 문으로 제물이나 신위에 관계된 것들만 통과하고 사람들은 통과할 수 없습니다. 또한 길 에는 박석을 깔아 세갈래로 하여 놓았는데 역시 가운데 는 신도(神道)이어서 신이 아닌 사람들이 그 길로 다니 면 귀신이 되지요. 박석(薄石)도 네모지게 만든 것이 아니라 생긴 대로 그대 로 사용하였습니다. 곧바로 오르면 정전(正殿) 정문으로 향하게 되어 있으나 왕이나 제사드리러 온 사람들은 오른 쪽으로 틀어 어숙실(御肅室)에 들게 되어 있습니다.

            어 숙 실 내에서
홍순민 교수님 왈 어떤 근거로 어숙실이라 하였느지 모르 겠답니다. 어떤 문헌에도 그런 말은 없다고 하네요. 좌우 지간 임금이나 세자가 목욕재계하고 제례를 준비하던 곳 입니다.

            정 원 주 위 전 도
이곳에서 서쪽문을 나와 북쪽으로 걸으면 역시 3개도로가 있는데 이곳 중앙도로는 어도(御道)로 임금의 길입니다. 이곳은 신도가 아닙니다. 30여 m 오르면 왼쪽 정전의 동 문으로 들어가는데 문 앞 길 위에 약간 높게 네모지게 만 들어 놓은 곳이 있었습니다. 이곳이 전하판위(殿下版位) 라고 하여 임금이 대기하는 장소입니다.그 옆에는 세자판 위(世子版位)가 따로 있습니다. 더 오른쪽에 찬막단(饌幕壇)이라고 제사지낼 제물을 검 사하기 위하여 잠시 올려놓는 곳이 있고 제물이나 제기 보관을 위한 전사청이 있습니다.

            전하 판위와 세자 판위

           찬 막 단

           전 사 청(典 祀 廳)
전하판위에서 서쪽으로 문을 들어서면 동회랑 기둥사이 로 인왕산이 멋들어지게 한눈에 들어온다는데 오늘은 나 무가 무성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전은 신들의 구역이 라 5계단을 올라야 그들 구역인 월대에 서는데 오르는 계단 난간에 구름을 조각하여 하늘 지역같이 하여 놓았 습니다. 재미있는 발상이지요.

           월대로 오르는 계단
종묘의 본 건물 정전(正殿), 풍수지리에 의해 정남향으로 짓지않고 뒤를 1시방향으로 틀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이 건물 처음에는 4대조 선조 들만 모셨다가 차차 19위를 모시는 바람에 옆으로 증축하 고 증축하여 기다란 형태의 건물이 되었지요.좌우 협실을 두어 솟을지붕을 하였으며 옆쪽은 화려하지않게 맞배지 붕으로, 또한 긴 회랑은 배흘림기둥으로 여러개 세워 간 결하면서도 웅장미를 갖춘 모습이었습니다.

            정 전 정 면 긴 회 랑

           정 전 및 월 대

    정 전 문(문짝을 어긋나게 하였다)

       정전뒤(목조를 다시 벽돌로 싸서 화마를 막았다)
또한 문짝은 서로 비틀리게 하여 바람이 통하게 하였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홍교수님의 부탁으로 정전 문을 열어 감실 {龕室:사당 안의 신주(神主)를 모셔두는 장}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감 실
감실 앞에는 제물을 올려놓는 탁자가 놓여 있고 그 밑에 관지(灌池;제사 지내기 전 혼백 중 백을 불러오기 위해 술을 붓는 곳)가 있고 앞에 노란 휘장을 두 번 걷으니 신 탑(神榻;신주 앞에 있는 탁자)이 있고 신탑 뒤로 왕과 중 전의 신위가 있으며 신위 오른쪽에 시보(諡寶;임금의 시호 를 새긴 도장)를 간직한 보장이 있고, 왼쪽에 시책(諡冊;공덕을 적은 책)을 보관한 책장이 있었 습니다. 감실과 감실 사이는 발을 내려 칸을 표시하였습 니다.정전은 국보 227호로 지정되어 있지요. 정전 앞의 넓은 월대에서 문무백관이 도열하여 제향을 피우며 아악에 맞추어 제례를 지내던 모습이 시공을 초월하여 아른거립니 다. 정전보다 규모가 작게 서쪽편에 영령전이 있는데 이곳 은 정전에서 밀려난 16명의 신위를 모신 곳으로 모든 형태 가 정전 형태로 구성되어 있고 보물 821호로 지정되어 있 습니다. 정전이나 영령전 서북쪽 뒤 끝에 예감(예坎)이라 는 것이 있는데 이는 축문이나 신에게 바쳤던 비단을 태 우는 곳입니다. 정전은 단일 건축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길며 월대는 일반 건축과 달리 천상(天上)의 표시로 높게 하였으며 이 는 사묘 건축의 품위와 장중함을 나타내기에 부족함이 없 는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예 감
(2006년 8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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