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탐방

근세의 숨결이 느껴지는 창덕궁

야정(野停) 2008. 8. 28. 18:25

동 궐 도

경복궁, 종묘를 자세히 알아본 지 2년이 지난 지금 전 에 비원이라 일컬어지던 창덕궁을 친구들과 함께 찾 아 보았습니다. 조선 3대 태종이 경복궁에 이어 두번 째로 지어진 창덕궁은 임진왜란 때 서울의 모든 궁궐 이 불탔을 때 같이 소실되었었으나 광해군 때 바로 재 건하여 오랫동안 실질적인 조선의 으뜸 궁궐로 사용되 었습니다. 경복궁은 남북을 축으로 일직선 따라 엄격 하게 배치된 데 비해 산자락에 자리잡은 창덕궁은 비 정형적인 배치가 자연과 조화를 이룸이 아름다워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매주 목요일은 자유 관람일이라 하여 문화해설사 없이 자유롭게 관람하는 날이라합니다. 요금은 15000원. 그러나 우리는 김영택화백의 도움으로 특별히 해설사 가 나오셔서 친절하게 설명하여 주는 특전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우선 돈화문(敦化門)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태종 때 세 워져 광해군 원년에 중건되었고 현재 남아있는 궁궐 정 문 중 가장 오래 되었으며 돈화라는 뜻은 백성을 가르 치어 감화시킨다라는 뜻으로 이 돈화문은 보물 383호 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돈 화 문

돈화문 지나 오른쪽으로 개울을 건너 궁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경복궁과 마찬가지로 궁으로 들어가려면 꼭 다 리를 건너게 만들었습니다. 경복궁에는 개천을 금천이 라 하고 다리는 영제교라 하였지만 이곳은 그대로 금천 교(錦川橋)라 부른답니다. 금천교 밑 남북으로 서수가 앉아 시냇물로 들어오는 잡귀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북쪽에는 거북이 비슷한 놈, 남쪽에는 해태 비슷한 놈 이 딱 버티고 있었죠. 정확하게 거북이나 해태는 아니 라고 합니다.

금 천 교

금천교 건너 진선문에 들어서면 이제부터 진정 궁에 들어 온 느낌이지요. 곧 바로 약 200 여m 걸어 왼쪽으 로 틀어 오르면 소위 비원이라고 부르던 구중 궁궐 후 원으로 가는 길인데 우선 궁 내부를 훑어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진선문 들어 서자 왼쪽으로 버티고 있는 인정전(仁政 殿)으로...인정전은 인정문을 통해 들어 가는데, 이는 창덕궁의 으뜸 건물이요, 왕의 즉위식이나 세자 책봉 식, 외국사신 접견 등 왕의 공식적인 행사를 거행하던 의식 공간입니다. 경복궁의 으뜸 건물은 근정전이요, 창덕궁은 인정전이죠. 현재의 인정전은 광해군 때 재 건된 것이 아니고 또 다시 불탄 것을 순조 4년에 재건 된 것이라 합니다.

인 정 전

그리고 일부가 서양식으로 고쳐지기도 하고요. 인정전은 국보 225호로 지정되어 있고 인정문은 보물 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인정전 조정(朝廷)에는 양쪽으 로 품계석들이 가지런히 세워져 있고요. 인정전에서 오른쪽으로 나가면 선정전(宣政殿)이 나오는데 이는 임금의 집무실입니다. 현재 궁궐에 남아있는 유일한 청기와 건물로 보물 814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선 정 전

고려대학교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동궐도(국보 249 호)에는 창덕궁 안에 청기와 건물이 두채 있는 것으로 표시되어 있는데 하나는 선정전이요, 또 하나는 경훈 각이었습니다. 선정전에서 오른쪽으로 희정당. 처음에 는 임금의 침전이었으나 나중에 임금의 집무 공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지금의 희정당은 일제 강점기인 1917년 화재로 소실, 1920년 경복궁 강녕전을 옮겨 지었다고 하네요.이 때 내부 일부는 서양식으로 꾸몄다는 군요. 뒷쪽으로 내전인 대조전(大造殿). 용마루가 없는 중전의 거처로 1917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경복궁 교태전을 헐어 가져다 지었다고 합니다. 대조전은 대청마루를 가운데 두고 서쪽 온돌에 왕비 침전를, 동온돌에 임금의 침전으로 나누어 놓았습니 다. 보물 816호라 하는군요.

대 조 전

대조전 왼쪽으로 타일로 붙인 수라칸이 있는데 이는 1917년 화재 이후 다시 지을 때 신식으로 개조하였고 또한 순종이 살면서 세월따라 많이 개조하였다고 합 니다. 수라칸 뒤로 경훈각. 앞에서도 말했지만 처음에 는 2층 누각으로 청기와 지붕이었으나 1917년 화재로 소실된 후 경복궁 만경전 건물을 헐어 옮겨 지으며 단 층으로 일반 기와지붕으로 하였다는 군요. 그렇지않아 도 지대가 높은 지역인데 이곳에 2층 누각으로 배치하 였다면 구중궁궐 깊은 곳에 갖혀 있는 왕비의 숨을 돌 리라는 배려에서 였으리라 생각되어 집니다. 예술적으 로 꾸며놓은 굴뚝을 감상하면서 내전 뒷뜰을 돌아 다 시 앞마당(인정문 앞)으로 나왔습니다.

이제부터 왼쪽으로 돌아 낙선재를 우측으로 두고 후원 으로 들어갑니다. 낙선재는 원래 동궁이 있던 자리였 으나 헌종이 편히 휴식을 취하며 책을 볼 수 있게 지어 진 공간으로 최근 이방자여사가 1989년까지 이곳에서 생활하였다 합니다. 후원으로 들어서서 작은 고개를 하나 넘으면 처음 만나는 곳이 있는데 이름하여 그 유 명한 부용지(芙蓉池).

부 용 지

부용지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라는 동양의 우 주관에 의해 조성된 연못입니다. 남쪽으로 두다리를 연못에 담그고 있는 부용정은 사방 으로 지붕이 돌출된 열십자 모양입니다.

부 용 정

부용정 건너 언덕 위에 자리잡은 이층 건물은 주합루 (宙合樓)로 정조 원년에 지어진 건물로써 1층은 왕실직 속기관인 규장각(奎章閣)을, 위층에는 열람실 겸 누마 루로 조성하였다고 합니다. 규장각은 정조의 개혁정치 를 뒷받침하기 위해 정책개발과 이를 위한 도서 수집 및 연구기관으로 설립되었다고 하네요. 주합루 오르는 작은 어수문(魚水門)이 있는데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다는 격언과 같이 통치자들은 항상 백성을 생각하 라는 교훈이 담겨진 문으로 정조의 민본적인 정치철학 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주 합 루와 어 수 문

그리고 주합루라는 현판은 정조가 직접 쓴 것이라 합니다. 부용지에서 북쪽으로 더 오르면 불로문 권역.

불 로 문

애련지, 애련당, 연경당이 있는 곳으로... 연꽃을 사랑한다는 군자의 덕목을 말하는 연못과 정자, 그 옆에 불로문(不老門)을 통해 연경당으로 갑니다. 임금의 무병장수를 기원하기 위해 통돌을 깎아 만든 문이 불노문입니다. 연경당은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가 아버지의 덕을 칭송하기 위해 존호를 올린 것을 기념 하기 위해 순조 28년에 지어진 건물입니다. 대궐이 있 는 궁내에 있으면서 단청하지않고, 또한 사랑채와 안 채로 남녀 공간이 구분된 사대부집과 같은 형태로 지 었습니다. 연경당 선향재에는 차양을 하였는데 이는 궁궐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구조를 하고 있습니다.

연경당 선향재 차양

이를 모방하여 강릉 선교장 열화당이 러시아에서 수입 한 자재로 차양을 하였다고 합니다. 다시 북쪽 산으로 더 오르면 한반도 지도 비슷하다는 반도지(半島池)가 나오고 그 못에 두다리를 드리운 관람정(觀覽亭)을 만나게 됩니다.부채골 모양의 기와 지붕을 올린 굴도 리집 입니다.

관 람 정

바로 위에 있는 존덕정(尊德亭). 지붕 처마가 두 겹으로 되어 있는 이 정자는 인조 22년 에 세워졌으며 창덕궁 내에 있는 정자 중 제일 으뜸으 로 친다고 합니다.

존 덕 정

존덕정에서 조금 쉬었다가 계속 계곡을 오르면 산마루 뒤에 계곡에서 흐르는 물길 따라 정자와 휴식처를 만 들어 놓은 옥류천이란 곳이 있습니다. 인조 14년 널 직한 바위인 소요암 위에 U자형 홈을 파서 물이 돌게 하여 임금이 신하들과 더불어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짖 기도 하였다 합니다. 주위에 다섯개의 정자가 있지요.

옥 류 천

옥류천을 끝으로 다시 연경당까지 내려 왔습니다. 목요일날은 연경당에서 국악공연이 있다고 하니까요. 국악 공연을 관람하고 궁을 나와 인사동으로...

국 악 공 연

김화백이 추천하는 순수 한식으로 음식을 준비하는 "오세계향"이라는 집으로 발길을 옮겼죠. 식물성으로 탕수욕도 만들고 갖가지 음식을 준비하였는데 깔끔하 고 정갈한게 정말 먹을만 하였습니다. 반주 없는 저녁 상이었지만 그런대로 특색있는 만찬이었습니다. 고풍 스런 분위기에 젖어 보낸 하루를 인사동 쌈지길을 걸 으며 마음껏 음미하여 보았습니다. (2008년 8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