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탐방

사명대사의 혼이 깃든 표충사(表忠寺)

야정(野停) 2009. 2. 3. 12:07
몇년 전 갑년 여행 때 전라남도 해남 끝 두륜산 자락에 
자리잡은 조계종 22교구 본사인 대흥사를 처음 방문하였
었습니다. 대흥사 하면 서산대사와 초의선사를 기억하게
하는 곳으로,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켜 크게 공헌한
서산대사를 기리기 위해 그곳에 표충사(表忠祠)라는 사당
을 세워 추모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같은 이름의 절이 밀양에 있다는 것을 알고도 
3년이 지난 지금에야 찾아 볼 수 있다는 행운에 흥분된 
마음으로 길을 나섰습니다.
우선 경부고속도로를 통해 대구까지 가서 동대구 나들목
으로, 다시 55번 민자고속도로인 대구 부산간 고속도로
도로를 통해 밀양 I.C로 나옵니다. 그곳에서 24번 국도
를 통해 동쪽으로 가다가 1077번 도로로 표충사 이정표
대로 갑니다. 밀양시 단장면 구천리, 재약산 남쪽에 있
는 표충사.
절 입장료가 3000원 이라고 합니다.
요사이 산사 입장료가 왜 이리 비싼지 산행하는 사람들은
가능하면 산사를 피하려고 합니다.
표충사(表忠寺)는 무열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하여 죽림사
라 하였는데 신라 42대 흥덕왕 4년에 인도 고승 황면선
사께서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봉안할 곳을 찾다가 이곳이
인연이라 하고 삼층석탑을 세워 사리를 봉안하고 주석(駐
錫)하면서 중창하였다고 합니다. 영정사로 이름이 바뀌어
이어 오다 월파스님이 표충사로 바꿔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표충사 천황제일루(天皇第一樓)라는 누각을 지나면 왼쪽 으로 사명대사 사당인 표충사(表忠祠)지역입니다. ㄷ자형으로 이루어진 건물의 첫째가 표충서원(表忠書院),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서산, 사명, 기허당, 세분의 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되었다고 합니다.

원래는 사명대사의 고향인 밀양시 무안면(武安面)에 있 던 것을 1839년 월파선사가 이곳으로 옮기면서 표충서 원이라는 편액을 걸고 절 이름도 표충사(表忠寺)로 고 쳤다고 합니다. 1971년 서원과 법당이 나란히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 여 경내 서편에 위치한 팔상전 자리(현재의 자리)로 옮 기고 본래 서원 건물을 팔상전으로 하였다 합니다. 이 표충서원은 조선시대 이후 유교와 불교와의 관계를 보여 주는 특이한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표충서원 옆에 ㄱ자 위치에 표충사(表忠祠)가 있습니다. 선조 임금이 사액한 표충사. 이곳 표충사에는 서산, 사명, 기허당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고 하는데 우리가 방문한 날은 화요일이라 박물관 과 사당이 문을 닫는 휴일이어서 볼 수가 없었습니다. 표충사 내부 사진은 절에서 제공한 사진을 이용하였습 니다.

표충사 옆에 박물관이 있는데 사명대사와 관련된 79점의 유물과 "청동은입사향완"이 소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청동은입사향완은 일종의 조그만 향로인데 국보 75호로 지정되어 있고,

선조대왕이 하사한 금란가사(金蘭袈娑)와 장삼(長衫)도 있다고 하는데 휴관인 관계로 아무 것도 못보고 아쉬움 만 달래 봅니다. 표충사당 경내에서 계단을 오르니 동서 남북을 지키는 사천왕들이 버티고 서있는 사천왕문을 통 과하게 됩니다.

문을 지나니 가람들이 남쪽을 향해 질서 정연하게 배치 되어 포근함까지 안겨주는 듯.

서쪽에서 동쪽으로 절 마당을 가로질러 들어 서면 우선 종무소가 있고 보물 467호인 3층석탑이 있으며 그 영역 을 지나니 팔상전이 있고 그 옆에 대광전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3 층 석 탑(보물 467호)
대적광전이라고도 하는 대광전은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모시는 전각입니다. 대광전 용마루에는 특이한 첨탑을 만들어 놓았더군요. 이는 간다라 불교양식의 상징인 스 투파로 부처의 사리를 봉안하는 일종의 사리탑입니다.

다시 돌아 나오면서 삼층석탑 앞에서 대광전과 재약산 을 배경으로 구도를 잡아 보았습니다.

삼층석탑은 통일 신라 작품으로 추정되며 해체 복원시 기단부 적심석(積心石)에서 19구의 금동불이 출토되었 으며 박물관에 보관하였다고 합니다. 조계종 통도사의 말사이지만 사명대사 호국성지로써 꿋꿋 하게 그 이름을 각인시키고 있습니다. 절 뒤쪽에 효봉대종사(曉峰大宗師)의 사리탑과 비가 있 는데 사리탑은 큰 돌 위에 작은 비같은 돌을 세워놓은 그런 형태로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서있는 돌에 사리탑이라고 새겨 놓았을 뿐.

사람들은 밑의 돌 속에 구멍을 뚫고 사리를 넣어 놓은 것으로 의심하여 돌속이 비어 있는지 두두려 본다는 군 요. 이 효봉스님은 우리나라 초대 판사를 하시다가 35세 에 회의를 느껴 전국을 방랑하다가 38세에 금강산 신계 사로 들어가 석두스님의 제자로 출가하였다 합니다. 대한 불교 조계종 통합종단 초대 종정을 역임하고 말년 에 표충사에 주석하시다가 1966년 열반에 드셨다 합니 다. (2009년 1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