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

다시 찾은 주흘산(主屹山)

야정(野停) 2008. 9. 27. 11:17

문경에 있는 주흘산을 5년만에 다시 찾아가 보았습니다. 전에는 소지 부부와 같이 찾았지만 이번에는 미투산악회 61차 정기산행으로 따라 나섰습니다. 주흘산은 백두대간의 배꼽에 해당되는 조령산, 포암산, 월악산과 함께 소백산맥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산입니다. 주흘산과 조령산이 함께 계곡을 이룬 문경새재 또한 역 사적으로나 전설적으로 얽힌 이야기가 많은 곳으로 이 고개를 제1관문(주흘관), 제2관문(조곡관), 제3관문(조 령관)으로 통과하게 하였고 또한 주위 성벽이나 유적들 을 묶어 사적 141호로 지정하여 놓았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곰씹으며 산행을 시작하였죠. 주흘관 들어서자 마자 오른쪽 산행 나들목. 전에는 모서리가 날카로운 돌들로 이루어진 너덜지대를 통과해야 했는데 이번에 보니 길을 잘 다듬어 놓았더군 요. 대략 30여 분 지나니 20m 높이의 여궁폭포가 나타 납니다.

올 여름은 어떻게 된 일인지, 지금이 9월 중순이 넘었는 데도 얼마나 더운지 땀이 비오듯 합니다. 여궁폭포에서 왼쪽으로 돌아 여궁폭포 위쪽으로 오르기를 또 30분. 해발 520m에 위치한 혜국사(惠國寺)가 보입 니다. 신라 문성왕 때 체징이 개국하여 법흥사라 하였는 데 고려말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이곳에 머물렀 기 때문에 유명해진 절입니다. 또한 그 때 국가의 혜택을 많이 입었다 하여 혜국사로 개명하였다고 하고요. 당시 홍건적이 얼마나 강했는지 모 르지만 봉화 청량산 건너 축융봉에도 공민왕이 쌓았다는 산성이 있습니다. 공민왕이 노국공주와 함께 봉화까지 피신하였을 때 이야 기입니다. 노국공주가 봉화 나분들 개울을 건너려할 때 물이 많아 건널 수 없자 부녀자들이 엎드려 그 등을 밟 건너게 하였습니다. 이것이 유래가 되어 놋다리밟기라는 놀이가 생겨났다고 하지요. 공민왕의 흔적을 이야기하다가 삼천포로 빠졌습 니다. 혜국사는 내려올 때 들리기로 하고 혜국사 밑에서 조금 쉰 다음 오른쪽으로 돌아 다시 산을 오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하산 길은 이쪽을 택하지 않아 들러 보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한 40여 분 지나니 샘물이 있고 그 옆에 작은 공터가 있는데 이를 대궐터라고 하며, 이는 공민왕이 잠시 은둔 하던 장소였다고들 합니다.

대 궐 터

대 궐 터 표 지 목
샘물로 목을 축이고 암 수술이 까실한 까실쑥부쟁이의 자태를 부리나케 촬영하고 다시 오릅니다. 30여 분 지나, 큰 바위 덩어리 두개 사이로 문경시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곳.전좌문이라는 지역에서 큰돌 사 이로 불어 오는 시원한 바람 맞으며 문경을 한 눈에 비 춰봅니다. 좌우의 바위가 문의 형태를 갖춰서 전좌문( 殿座門)이라 한답니다.

전좌문 있는 곳에 있는 이정표

전 좌 문
이곳 지나 100여m 오르니 주흘산 주봉(1075m). 표지석에는 그냥 주흘산이라고 하여 놓았습니다.

여름 한 달간 산 구경도 안하였더니 오르는 중간 중간 힘이 벅차 쉬기를 여러 차례 하였습니다. 문경에서는 영봉보다는 주봉을 진산(鎭山;난리를 진압하 고 고을을 보호하는 산)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주흘산에서 영봉이 최고봉이지만 영봉은 산 가운데 있어 서 문경시가지에서는 잘 보이지가 않으니 진산으로 섬길 수가 없지요. 주봉 주위에서 가져온 간식을 풀어 요기를 하였죠. 여성회원들이 많으니 먹을 것은 항상 풍부하였습니다. 식사 후(대략 30여 분 지나) 북동쪽 영봉으로... 주봉 오를 때는 능선도 없이 계속 산비알을 힘들여 올 랐지만 영봉으로 가는 길은 능선길로 이루어져 주봉 오 를 때처럼 힘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대략 30∼40분 걸려 삼거리 도착.

주 흘 산 영 봉 이 정 표
이곳에서 영봉(1106m)으로 오르는 길과, 그대로 직진하 면 조곡골로 가는 길로 삼거리를 만들었는데, 영봉으로 올라 그대로 직진하면 제1관문인 조령관으로 가는 길이 고, 영봉 정점에서 뒤돌아 삼거리로 돌아 오면 조곡관 관으로 가게 됩니다. 한 20여 분 투자해 영봉을 다녀오기로... 영봉은 조망이 그리 좋은 곳도 아니고 그저 주흘산에서 최고봉이라는 것 외에는 특이할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영봉에 점 찍고 바로 돌아섰죠.

영 봉 표 지 석 앞에서
다시 삼거리 와서 조곡골로... 이제부터 하산길... 어제 비가 왔기 때문에 곳곳에 습기가 있어서인지 미끄 러운 곳이 한 두곳이 아니었습니다. 자갈 조각 몇 개만 밟아도 미끄럽고 비스듬한 마른 땅도 미끄러워 여러 사 람들이 엉덩방아를 찧었습니다. 간신히 산비알을 벗어나니 계곡물이 보이기 시작하더군 요.너도 나도 화기 오른 발을 물에 담그느라 정신이 없 습니다. 다시 신을 신고 계곡따라 걷습니다. 영봉에서 2.5km, 대략 한시간 소요되었다는 곳에 돌무 더기가 많이 쌓여 있었습니다. 꽃밭서덜(서덜은 너덜의 사투리)이라는 표지목이 있더군요.

꽃 밭 서 덜 표 지 석
돌들을 가즈러니 쌓아 소원 성취를 비는 돌탑으로 만들 었는데 어떤 사람들이 그렇게 정성을 들였는지, 그것도 보기 좋은 작품이 되어 버렸네요. 군데 군데 개쑥부쟁이, 까실쑥부쟁이, 산구절초가 가 을을 알려주고 있건만 몸은 땀으로 젖어만 갑니다.

꽃 밭 서 덜 앞에서
아직도 1시간은 더 가야 조곡관이고 조곡관에서 주흘관 까지 4km이니 이곳도 1시간 가야 하고... 조곡골을 물길따라 3km 계속 내려 오니 기어이 조곡관.

조 곡 관
이제부터는 대로를 따라 내려가면 됩니다. 바로 길 옆에 조곡폭포.

조 곡 폭 포 앞에서
더 내려오면 조선 후기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산불 됴심비(산불조심비)".

산 불 조 심 비
그를 지나 옛사람들이 목을 축이던 주막집. 지금 주모는 없지만 그래도 "주모, 국밥 한 그릇 말아 주 소." 라고 소리 지르는 선비가 아른거리는 듯 합니다. 영남감사 이취임식을 하던 교귀정, 용추약수, 오늘날의 여관같은 조령원터, 옛 고을 지도자들의 공덕비들, 왕 건 촬영지...

교 귀 정

조 령 원
전에는 왕건촬영장을 그냥 들어가 구경하였는데 지금은 요금을 받더군요.워낙 지친 몸이라 들어가기도 싫어 그

그냥 주차장까지 내려 왔습니다. 꼬박 6시간 20분. 먼저 온 일행들은 버스 옆에 자리를 피고 앉아 찌게를 안주 삼아 막걸리, 소주를 기우리고 있더군요. 털썩 주저앉아 몇 순배 돌렸습니다. 다리가 천근같아 상경하는 버스에서 그냥 잠에 취해 버 렸답니다. (2008년 9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