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중국)

실크로드 따라 떠난 여행ㅡ2(트루판)

야정(野停) 2010. 8. 1. 18:41
위구르어로 "패인 땅"이라는 트루판(吐魯番).
트루판에 있는 호수 애정호는 해수면보다 154m나 낮고, 트
루판 시가지 전체가 해수면보다 낮은 땅이나 실크로드의 요
충지에 위치해 서한(西漢)시대부터 서역지방의 중심지로 교
통의 요지였었다. 여름에는 매우 더워 화주(火州)라고도 부
르며, 고온, 강풍에 해가 길어 당도 높은 과일, 특히 포도
의 생산지로 유명하며 목화의 산지로도 한몫 한단다.
위구르족이 주류를 이루며 대략 50만이 거주한다고 한다.
일년 내 강우량이 16mm 정도라고 하니 거의 비가 안온다
고 보아도 틀리지 않을 듯.
그러나 아침식사를 하고 호텔 앞을 서성이니 빗방울이 드문
드문 떨어 진다. 우리가 비를 몰고 오는 신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떨어지는 빗방울이 셀 정도, 떨어졌다 그쳤다 한다.
어제 그리 걱정했던 더운 기운은 어디로  갔는지 날씨가 아
무렇지도 않으니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다.
 1. 고창고성(高昌故城)
9시 정도 고창고성으로 향한다.
트루판에서 동쪽으로 40km 떨어진 화염산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트루판에서 그래도 높은 지역이라 하여 높을 고자를
썼다고 한다.
고창고성은 B.C 1c 이광리가 키르키스탄으로 천리마를 구하
기 위해 진군하던 중 시원한 물줄기를 찾아 헤매다 발견하
여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하던 보루로 고창벽이라 하였다 한
다.또한 7c 경 당나라 현장법사가 하밀에 도착하였다는 소 
식을 들은 고창왕국의 국문태(鞠文泰)라는 왕은 사람을 보
내 현장법사를 정중히 모셔 왔다 한다. 왕은 한족으로 불교
를 신봉하기 때문에 현장을 친절하게 모셨고 현장법사는 고
창에 1개월 정도 체류하며 경법을 전하고 떠나려 하는데,
고창왕이 자신을 도와 정사를 맡아 달라고 청하였으나 거절
하고 파미르고원을 넘어 인도로 갔다 한다.
그러나 현장이 돌아올 때는 현장의 고국 당나라에 고창왕국
이 멸망해 없어졌다고 한다. 9c 중엽 당이 쇠락하자 회골족
이 회골왕국을 세우고 13c에 몽고에 의해 완전 멸망하였단
다. 고성은 흙과 버들가지, 마른 풀을 섞어 흙벽돌로 만들
어 성을 쌓았다고  하는데 왕국이 멸망한 후 주위 농민들이
벽돌을 깨서 비료로 쓰는 바람에 더 폐허가 되었다고 한다.

고창고성에서는 나귀가 끄는 마차를 타고 고성 안으로 들어 가 고성의 중심부를 관찰한다. 거의 2000년이란 세월이 지 났는데 어떻게 흙벽돌이 그대로 남아 있을 수 있는지, 비 가 얼마나 오지를 않으면 이럴 수 있을까?

나 귀 마 차
둘레가 5.4km, 면적이 200만 ㎢인 고창성은 현장법사가 설 법하던 장소는 어느 정도 복원시켜 놓았지만 곳곳에 무너 진 흙벽돌들이 그 옛날의 영화를 조영하여 주는 듯한다.

현장법사가 설법하던 장소

야생 수박이라 하는데 독이 있어 먹지 못한다고 한다
나귀마차를 타고 다시 밖으로 나와 버스에 오른다. 아직 날씨가 흐린 상태로 있어서 인지 열대 바람이나 따가 운 햇살은 느끼지 못하고 있다. 낯은 섭씨 43도까지 오르 고 사막의 지열은 70도 넘는다고 하는데... 모래 바람이 심해 마스크를 써야 한다고 하는데 오늘은 모 래 바람도 없고 축복받은 여정인가 보다. 2. 아스타나(阿斯塔那,아사탑나) 고분군 화염산과 고창고성 사이 포도밭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는 있는 아스타나 고분군. 고창국과 당나라 때의 무덤군이다.

고분 입구(서상섭 전의원과 조균석 교수)
무덤이 456기 발굴되었고 이곳에서 총 6톤이 넘는 2700 여 건의 문서가 출토되었다고 한다. 고분 입구에 들어 가면 사람 얼굴에 뱀의 꼬리를 하고 있는 복희여와상이 서있는데 이곳 고분군에서 발굴된 유물을 대 표한다고 한다.

복 희 여 와 상
아스타나는 "휴식"을 의미하는 위구르어로 "휴식의 장소" 혹은 "영원이 잠든 묘지"라는 뜻이다. 이곳은 1916년 외국 탐험대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워낙 고온 건조한 탓에 시신들이 썩지 못하고 그냥 말라 미이라가 되었으며 이곳에서 발견된 미이라는 현재 우루무 치 박물관과 투루판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우루무치 박물관에 보관된 것 중 "누란 미녀(죽음의 모나 리자)"가 제일 유명한 데 이는 하미(蛤密,합밀)에서 발견 된 것이라 한다. 기타 모두 21구라고 하는데 당나라 초기 고창왕국의 대장 군인 "장건"의 미이라도 우루무치 발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고 한다.

봉분이 별로 없는 벌판같은 묘지들

고분 속으로 들어 가는 층계
이곳 아스타나 고분 중 내부가 공개된 고분은 3개로 그 중 216호 고분에는 유교의 가르침을 풀이한 6첩 병풍이 있고 다른 곳에는 부부 남녀 미이라가 있으나 보존 상태가 좋은 것은 아니었다. 좋은 것은 모두 우루무치 박물관으로 옮겼 다고 한다.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소장품은 렌즈에 담지 못했다. 3.화염산(火焰山)과 베제크리크(Bezeklik,栢孜克里克, 백자극리극)천불동 아스타나 고분군에서 멀지않은 화염산으로... 삼장법사 일행은 불을 끌 수 있는 파초선을 구하기 위해 철선(鐵扇)공주와 한판 승부를 벌여 파초선으로 불을 끄고 지나갔다는 서유기의 내용에 나오는 화염산. 동서 길이가 100km,남북이 9km에 달하고 최고봉이 851m 의 산으로 대부분 홍사암으로 되어 있고 풀도 길게 자라지 못한다 한다.

화 염 산
40여 년 전 이곳 극단의 최고 온도가 48.5도에 달해 중국 에서 가장 높은 기온을 기록하였으며 그 때 지표면 온도가 82.3도 였다고 한다. 이렇게 화염산의 온도가 높은 것은 북쪽이 높고 남쪽이 낮은 분지가 태양을 향해 기울었기 때 문이라 한다. 위구르인은 이곳을 빨간산이라 부르며 계곡의 주름진 부분이 길이 피어 오르는 듯 보여 화염산이라 하였단다. 화염산 사이 계곡으로는 설산에서 흘러 내려 온 물이 황토 빛을 내며 흐르고 있었다. 이렇게 여기까지 물이 흐르는 것 으로 보아 트루판 지역이 오아시스가 형성되지 않을 수가 없다고 본다. 지금은 지하로 카레즈가 형성되어 물 걱정은 없는 지역이 되었다. 6∼13c에 위구르인들이 계곡 옆 절벽에 굴을 파고 석굴 사 원을 만들었으나 이슬람 침공으로 파괴되고 청나라 말에는 서구 열강 탐험대원들에 의해 탈취 당하고 문화혁명 때 완 전 더 파괴되었다 한다. 50여 개 석굴 중 8개만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

베 제 크 리 크 석 굴
이곳 유물 중 일본인 오타니 고즈이가 반출하여 일본으로 가져가다가 이루지 못한 것이 우리 중앙박물관에 보관되에 있다고 한다.

일본인에 의해 반출되어 우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된 유물(퍼옴)
4. 소공탑(蘇公塔) 베제크리크 천불동을 떠나 소공탑으로 가면서 포도농가를 들 렸다. 넓은 집에 마당은 포도넝쿨로 하늘을 가리고 주위에 리고 주위에 탁자를 만들어 손님들을 둘러 가며 앉게 하여 놓았다. 우선 수박과 메론, 건포도를 시식용으로 내어 놓는다. 그동안 위구르 처녀가 민속춤을 음률에 맞춰 선 보인다. 과일을 시식하며 민속춤을 구경한 다음 그들이 수확한 건포 도에 대해 설명한다.

민속춤을 추는 위구르 처녀
강제로 말린 것, 약품을 써서 말린 것, 건조장에서 말린 것, 포도나무에서 따지 않고 말린 것, 등 여러 가지 설명이 있 었다. 포도나무에서 말린 것은 1kg에 150위안(우리 돈 30000원)이라 하였지만 그래도 좋은 것만 택하게 된다. 좀 비싼 느낌이 있으나 아무 것도 안 사면 조금은 미안한 느낌이 들어 필요한 것은 사게 된다. 농가를 나와 소공탑으로... 1777년 청나라 건륭제 때 건립된 탑으로 트루판의 소래만 (蘇來滿)왕이 자신의 아버지 액민(額敏)을 위해 세운 탑 이라 액민탑이라 부르기도 한단다. 전체 높이가 44m로 외벽에 꽃 무늬 도안을 장식하여 화려 하고 장엄한 느낌을 준다. 탑 안에는 나선형 계단이 있어 꼭대기까지 올라 주변 경관을 감상하게 만들었단다. 신강위구르 지역에서 최고 높은 고탑(古塔)이며 이슬람 건 축물이다.

소 공 탑과 액 민 왕 상

소 공 탑 과 사 원

소 공 탑
5. 교하고성(交河故城) 3시 넘어 점심식사를 끝내고 다시 교하고성으로 갔다. 트루판시 서쪽 교외로 부터 10km 떨어진 곳에 있는 유적 지로 도시의 길이는 1650m, 폭이 300m라고 한다.

교 하 고 성
도시 주위에 2개의 하천이 둘러 나가는 벼랑에 위치하기 때문에 교하고성이라 한단다. B.C 3c 이란계 차사인이 세운 차사국의 도시로 실크로드 교통의 요충지였다 한다. 14c 원나라 때 전쟁으로 훼손되 었으나 현재 세계에서 가장 잘 보존된 미개간 도시란다. 성은 벽돌을 쌓아 만들었기 때문에 오래도록 보존되었고 지하사원과 차사국 귀족 무덤이 지하에서 발견되었다. 바다 진주, 사리 등 진귀한 물품도 출토되었다고 하고...

지 하 왕 궁
이와같이 지하가 발달한 도시이기 때문에 나무데크로 된 길 이외에는 일절 다른 곳으로는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 어떤 곳이 무너져 지하에 파묻힐지 모르기 때문이란다.

성 안의 일부 모습

대 불 사

대 불 사
6. 카레즈(Karez,坎爾井,감이정) 카레즈는 관개라는 뜻의 페르시아어로 고온 건조 지역의 물 증발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지하 수로를 말한다. 트루판은 연 중 16mm의 강수량에 3000mm 증발한다고 하 니 설산에서 물이 흐르다가 거의 증발하여 버리기에 이러한 관개 수로를 만들었던 것이다. 이는 중국의 3대 공정 중 하나로 총연장이 5000km로 매년 3억톤 이상의 물을 도시 로 공급한다고 한다.

카 레 즈(坎 爾 井)
카레즈의 일부 관람을 끝으로 트루판 일정은 끝이다. 7시에 저녁을 먹는다고 한다. 점심 먹은지 얼마 되지 않았고 나는 점심 이후 탈이 나 혼 이 났는데 또 저녁이라니 아무 생각이 없다. 아픈 배 때문에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지사제만 한번 더 먹었다. 돈황 가까이에 있는 유원으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트루판역으로 향한다. 저녁 8시 10분 트루판 출발. 기차는 4인 1실 2층 침대칸으로 그런대로 깨끗했다. 전에 인도 바라나시가는 기차보다 훨씬 좋다. 열차 내에서 파티를 벌린다. 양주에, 고량주에, 술이 약한 여성분들과 나는 내가 준비 해 간 산사춘으로 아름다운 사막의 밤 열기를 식히면서 유 원으로 달려 간다. (2010년 7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