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성곽과 문
李成桂가 도읍을 漢陽으로 정하고 背山臨水, 左靑龍, 右白虎로 代表되어지는 風水地理說을 바탕으로 한양의 구조를 어떻게 꾸몄는가 알아보자. 커다란 분지로 이루어진 이곳은 山들로 둘러 쌓여있다. 겨울 찬바람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인수봉, 백운대, 만경대의 三角山이 있고,그 동쪽이 아차산, 서 쪽에 모악산(지금의 덕양산), 남쪽으로 관악산, 이렇게 바깥쪽으로 네개의 산이 둘러쌓여 있으며,이 네개의 산 을 外四山이라 부른다. 외사산 안쪽으로 內四山에 해당하는 네개의 산이 존재 한다. 좌청룡에 해당하는 동대문 근처 駱山(낙산),우백호에 仁王山, 남주작에 南山, 북현무에 해당하는 산이 경복 궁 북쪽, 지금의 청와대 뒷산 北岳山에 해당한다. 조선이 개국하고 도읍지를 서울로 정하고 성으로 둘러 쌓았는데 이것이 총 연장 18km에 이른다. 이 성곽은 內四山을 이어서 1398년에 완공하였다. 그리고 조정은 이 성곽에 드나들 수 있는 문을 건설하 였는데 그 문은 정방향을 지향하는 곳에 4개의 大門을 만들었고 다시 그 사이에 4개의 작은 문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四大門이요, 四小門이다. 이 네문의 명칭은 당시 조선이 儒敎가 國是이었던바 유 교이념을 삽입하여 명명하였다. 南쪽에 禮를 숭상하자는 崇禮門이고, 서쪽에 義를 돈독 케하자는 敦義門(서대문,새문,新門 현재없음) 동쪽에 해당하는 글자인 仁을 넣어서 문이름을 짓는데 조정은 고민하게 된다. 즉 서울의 풍수지리가 동쪽 즉 좌청룡에 해당하는 지세가 약한 것이다. 駱山은 흡사 마을의 단순한 언덕인양 그 형세가 약한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地勢를 북돋아 주기 위해 "之"자 하나를 더 넣어 "興仁之門"이라 지었다. 그것도 모자라서 성곽 을 바깥쪽으로 다시한번 휘어두른 甕城(옹성)의 형태로 만들었다. 북쪽에 해당하는 문이 肅精門(숙정문)인데 이는 산에 연해있어 이용하는 사람들이 적어 북대문이 라는 이름을 얻지 못하고 北門이라고 하였다. 더욱이 말기에는 풍기문란을 이유로 이 문은 폐쇄되었고 지금도 국가원수의 안위라는 명목으로 폐쇄되어 있다. (삼청동,성북동경계) 四大門사이에는 四小門이 있는데, 동북쪽에 東小門 즉 惠化門 동남쪽에 南小門 즉 光熙門(屎口門) 남서쪽에 昭義門 (현재없음) 북동쪽에 彰義門(紫霞門;자하문-저녁때 자주빛 노을 이 비친다하여 자하문이라고도 함)이 그것이다. 아울러 각문마다 출입할수 있는 외교사신들이 정해져 있 었다. 남대문으로는 중국사신, 혜화문은 여진, 거란사신, 광 희문으로는 일본사신들이 드나들었다고 한다. 이러한 서울 외곽은 1900년대에 일제강점기에 재개발이 라는 명목으로 헐려 지금은 남산일대, 성균관대학 근처 혜화동일대, 북악산일대의 일부부만 남아있다. 이상 서울의 성곽과 사대문,사소문에 대한 역사적 의미 를 되새겨보았다. ★ 2003년 11월 30일 서울시 자료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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