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탐방

수원 화성 탐방

야정(野停) 2024. 3. 20. 16:12

수원에 있는 화성은 조선 정조 20년(1796년)에

축성되었는데 정식 명칭으로 화성, 별칭으로 수

원성(水原城)으로 불리우며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총 길이 5.74km, 화성시 안녕동에 융건릉을 조

성하면서 그 일대에 있던 수원도호부의 읍치(

관아가 있던 마을과 같은 행정중심지)를 지금의

자리로 옮기면서 만든 계획도시로 정조의 업적

중 하나이다.

원형 그대로인 건축물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

산에 등재가 가능한데  이곳 화성은 "화성성역

의궤"라는 기록물 덕분에 원형에 가깝게 복원

할 수 있어 등재될 수 있었다.

우리는 먼저 장안문(長安門;북문)에 모여 행궁으

로 향했다.

행궁의 정문인 신풍루(新豊樓)를 통과한다.

신풍이란 한나라 고조가 "풍패는 새로운 또 하나

의 고향"이라는 뜻으로 정조도 이곳을 또 하나의

고향이라 생각하고 지었다 한다.

다음 좌익문(左翊門).

"곧 곁에서 돕는다"는 뜻이란다.

마지막 중양문(中陽門)을 통한다.

내삼문 중 행궁의 정전 앞에 있는 문이다.

정전인 봉수당(奉壽堂).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이곳에서 치렀

다 한다. 봉수란 "장수를 받들어 빈다"는 뜻이다.

그리고 당호를 전(殿)이 아닌 당으로 한 것은 정

조가 효장세자의 양자로 되어 있어 어머니 또한

대비가 될 수 없고 그 어머니를 위한 집이라 당

이라 하였다.

오른쪽으로 문을 통해 나가면 낙남헌(洛南軒).

중국 한나라를 세운 유방이 부하들 덕분에 나라

를 세울 수 있었음에 감사하며 닉양의 남궁에서

연회를 베풀었다는 이야기를 본떠서 이름을 지

었다. 화성행궁에서 공식행사나 연회를 펼 때 사

용하는 건물이다.

오른쪽 끝에 화령전(華寧殿)이 있는데

정조의 초상화를 모셔놓은 영전(影殿)이다.

 

부속 건물들을 대강 보고 밖으로 나선다.왼편으

로 행궁을 끼고 상가들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길 옆에 정월(晶月) 나혜석(羅蕙錫)에 대한 소개

간판이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화가.

대표적 신여성,최초의 여류 소설가,문필가, 여성

운동가.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운 남녀 평등론자.

우리나라 최초로 유럽여행을 다녀온 여성.

그 시대에 과감히 다른 남자도 만났던 신여성으

로 이혼, 말년에 질병과 싸우며 사회의 질시를

이기지 못해 행려병자로 53세에 사망하였다.

탈런트 나문희가 그녀의 증손녀이고, 서울대 법

대 교수였던 김진교수가 그의 둘째 아들이요, 전

한은 총재였던 김건이 그의 셋째 아들이다.

초기에는 자식들도 악마라고 한 탓에 말년에 자

식들이 보고싶었지만 전남편 김우영변호사의

거부로 죽을 때까지 만나지 못하였다고 한다.

또한 자식들도 나혜석이 엄마라고 죽을 때까지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김건 총재가 사망 후 어머니와 아버지의 초상화

(나혜석이 그린)를 수원시에 기증하라고 하였단

다.

계속 북쪽으로 걸어가 화서문에 도착한다.

문루는 2층 건물이며 문의 앞부분에 반달형의 전

축 옹성(벽돌로 쌓은 둥근 성곽)으로 되어있다.

전쟁 피해를 덜 입어 보물 제 403호로 지정되어

있다.

여기서부터 성곽으로 올라 동쪽으로 움직인다.

바로 옆에 서북공심돈(西北空心墩).이 나온다.

공심돈은 적의 동향을 살핌과 동시에 공격도 가

능한 시설로 수원 화성에만 볼 수 있다.

이래쪽 부분의 치성은 석재로, 위쪽 부분의 벽체

는 벽돌로 쌓았다. 내부는 계단을 만들어 오르

내렸다. 속이 비었다 하여 공심돈이라 하고 보물

제 1710호로 지정되어 있다.수원시 심벌마크에

있는 누각의 모티브가 되었다.

성곽 밖 정원의 모습도 담아본다.

북포루의 성벽 위에서의 모습

계속 걸어 장안문(長安門)까지.

수원 화성의 북문이자 정문이다.

중국 옛 왕조인 전한,수,당나라의 수도였던 장안

(지금 시안)에서 따온 것이다.

홍예 위에 2층 누각이 설치된 전형적인 성문 구

조이다.

성문의 바깥에는 반원형의 옹성을 쌓았는데 이

는 성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숭례문보다 큰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성문이다.

전쟁때문에 원형 자체대로 있던 것이 아니어서

국보나 보물로서 인정받지 못하였다.

장안문 양 옆에 북서적대, 북동적대가 있는데 이

는 성문을 공격하는 적을 방어하기 위해 성문 좌

우 옆에 있는 치성 위에 세운 시설이다.

장안문과 팔달문에만 설치되어 있다.

오른쪽으로 계속 성곽을 따라 움직이다 보면 화

홍문(華虹門)에 다다른다. 광교산에서 발원한 물

이 이곳에 이르러 수원천이 되고 화성을 통과한

다. 그 입구에 석조 아치로 7개의 수문을 만들고

그 위에 누각을 세웠다.

화성의 북수문이라 하고 수문과 누곽을 비추는

조명으로 무척 아름답게 보인다. 수원팔경 중 하

나이다.

주위에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한다.

연포갈비에서 갈비탕으로 때우고 다시 출발.

오늘 날씨가 얼마나 쌀쌀하던지 친구의 도움

으로 목도리를 얻어 휘감고 있었다.

화홍문을 가로질러 오르면 방화수류정(訪花隨柳

亭)를 만나는데 주변을 감시하고 군사를 지휘하

는 지휘소와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정자의 기능

을 함께 지니고 있는 이 건물은 동북각루라고도

한다. 보물 제 1709호로 지정되었다.

방화수류정은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닌다”는

뜻이다.

왕의 건물에서 일반 건물로 전환되어 온돌방이

흔적만 남아 있다.

수류정에서 아래쪽에 용연이라는 못이 있다.

 

이 주위가 화성에서 제일 아름다운 곳이라 한다.

동북포루에서 동북각루 방햔으로 각을 잡아 보았

다.

계속 오른쪽으로 가면 연무대와 관광안내소에 다

다른다.

왼쪽 위에 동장대가 있고

전방 높은 곳에 동북공심돈이 있다.

동장대는 무술 연마가 이루어진 곳이라 연무대라

고도 한다.

공심돈은 적의 동향을 살피기 위한 망루같은 것

으로 커다란 둥근 원같은 화성 성곽내에서 가장

특징있는 건물이다. 내부는 소라처럼 생긴 나선

형의 벽돌 계단을 통해 꼭대기에 오를 수 있어

일명 소라각이라 불린다. 연무대 넓은 터에 세계

문화유산이라는 새김돌이 있다.

창릉대로를 건너 앞에 창룡문(蒼龍門).

창룡문은 화성의 동문으로 창은 “푸르다“라는 뜻

으로 동쪽을 가르키기도 한다.

창룡문은 바깥에서 보면 양쪽 성벽이 안으로 휘

어 들어간 곳에 자리 잡고 있어 돌출된 양쪽 성

벽이 성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형태의 문도 화성의 특징일 수 있다.

이제부터 남쪽으로...

구멍이 다섯 개이고 모두 벽돌로 쌓아 만든 봉

수대로 봉돈이라한다.

더 남쪽으로 성벽을 타면 동삼치, 동남각루까지

간다.

동남각루를 지나면 팔달문으로 내려간다.

지동시장으로, 시장에서 남수문을 바라보고 팔

달문으로 간다.

화성 남문으로 보물 제402호로 지정되어 있다.

문 형태는 장안문과 비슷한 형태이다.

이어서 팔달산으로 올라 성곽을 돌아야 하는데

그냥 생략하기로 하였다.

남문시장 주위에서 차를 타고 상경하기로 한다.

 

                                         (2024년 3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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