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에 있는 화성은 조선 정조 20년(1796년)에
축성되었는데 정식 명칭으로 화성, 별칭으로 수
원성(水原城)으로 불리우며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총 길이 5.74km, 화성시 안녕동에 융건릉을 조
성하면서 그 일대에 있던 수원도호부의 읍치(
관아가 있던 마을과 같은 행정중심지)를 지금의
자리로 옮기면서 만든 계획도시로 정조의 업적
중 하나이다.
원형 그대로인 건축물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
산에 등재가 가능한데 이곳 화성은 "화성성역
의궤"라는 기록물 덕분에 원형에 가깝게 복원
할 수 있어 등재될 수 있었다.
우리는 먼저 장안문(長安門;북문)에 모여 행궁으
로 향했다.
행궁의 정문인 신풍루(新豊樓)를 통과한다.
신풍이란 한나라 고조가 "풍패는 새로운 또 하나
의 고향"이라는 뜻으로 정조도 이곳을 또 하나의
고향이라 생각하고 지었다 한다.
다음 좌익문(左翊門).
"곧 곁에서 돕는다"는 뜻이란다.
마지막 중양문(中陽門)을 통한다.
내삼문 중 행궁의 정전 앞에 있는 문이다.
정전인 봉수당(奉壽堂).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이곳에서 치렀
다 한다. 봉수란 "장수를 받들어 빈다"는 뜻이다.
그리고 당호를 전(殿)이 아닌 당으로 한 것은 정
조가 효장세자의 양자로 되어 있어 어머니 또한
대비가 될 수 없고 그 어머니를 위한 집이라 당
이라 하였다.
오른쪽으로 문을 통해 나가면 낙남헌(洛南軒).
중국 한나라를 세운 유방이 부하들 덕분에 나라
를 세울 수 있었음에 감사하며 닉양의 남궁에서
연회를 베풀었다는 이야기를 본떠서 이름을 지
었다. 화성행궁에서 공식행사나 연회를 펼 때 사
용하는 건물이다.
오른쪽 끝에 화령전(華寧殿)이 있는데
정조의 초상화를 모셔놓은 영전(影殿)이다.
부속 건물들을 대강 보고 밖으로 나선다.왼편으
로 행궁을 끼고 상가들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길 옆에 정월(晶月) 나혜석(羅蕙錫)에 대한 소개
간판이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화가.
대표적 신여성,최초의 여류 소설가,문필가, 여성
운동가.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운 남녀 평등론자.
우리나라 최초로 유럽여행을 다녀온 여성.
그 시대에 과감히 다른 남자도 만났던 신여성으
로 이혼, 말년에 질병과 싸우며 사회의 질시를
이기지 못해 행려병자로 53세에 사망하였다.
탈런트 나문희가 그녀의 증손녀이고, 서울대 법
대 교수였던 김진교수가 그의 둘째 아들이요, 전
한은 총재였던 김건이 그의 셋째 아들이다.
초기에는 자식들도 악마라고 한 탓에 말년에 자
식들이 보고싶었지만 전남편 김우영변호사의
거부로 죽을 때까지 만나지 못하였다고 한다.
또한 자식들도 나혜석이 엄마라고 죽을 때까지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김건 총재가 사망 후 어머니와 아버지의 초상화
(나혜석이 그린)를 수원시에 기증하라고 하였단
다.
계속 북쪽으로 걸어가 화서문에 도착한다.
문루는 2층 건물이며 문의 앞부분에 반달형의 전
축 옹성(벽돌로 쌓은 둥근 성곽)으로 되어있다.
전쟁 피해를 덜 입어 보물 제 403호로 지정되어
있다.
여기서부터 성곽으로 올라 동쪽으로 움직인다.
바로 옆에 서북공심돈(西北空心墩).이 나온다.
공심돈은 적의 동향을 살핌과 동시에 공격도 가
능한 시설로 수원 화성에만 볼 수 있다.
이래쪽 부분의 치성은 석재로, 위쪽 부분의 벽체
는 벽돌로 쌓았다. 내부는 계단을 만들어 오르
내렸다. 속이 비었다 하여 공심돈이라 하고 보물
제 1710호로 지정되어 있다.수원시 심벌마크에
있는 누각의 모티브가 되었다.
성곽 밖 정원의 모습도 담아본다.
북포루의 성벽 위에서의 모습
계속 걸어 장안문(長安門)까지.
수원 화성의 북문이자 정문이다.
중국 옛 왕조인 전한,수,당나라의 수도였던 장안
(지금 시안)에서 따온 것이다.
홍예 위에 2층 누각이 설치된 전형적인 성문 구
조이다.
성문의 바깥에는 반원형의 옹성을 쌓았는데 이
는 성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숭례문보다 큰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성문이다.
전쟁때문에 원형 자체대로 있던 것이 아니어서
국보나 보물로서 인정받지 못하였다.
장안문 양 옆에 북서적대, 북동적대가 있는데 이
는 성문을 공격하는 적을 방어하기 위해 성문 좌
우 옆에 있는 치성 위에 세운 시설이다.
장안문과 팔달문에만 설치되어 있다.
오른쪽으로 계속 성곽을 따라 움직이다 보면 화
홍문(華虹門)에 다다른다. 광교산에서 발원한 물
이 이곳에 이르러 수원천이 되고 화성을 통과한
다. 그 입구에 석조 아치로 7개의 수문을 만들고
그 위에 누각을 세웠다.
화성의 북수문이라 하고 수문과 누곽을 비추는
조명으로 무척 아름답게 보인다. 수원팔경 중 하
나이다.
주위에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한다.
연포갈비에서 갈비탕으로 때우고 다시 출발.
오늘 날씨가 얼마나 쌀쌀하던지 친구의 도움
으로 목도리를 얻어 휘감고 있었다.
화홍문을 가로질러 오르면 방화수류정(訪花隨柳
亭)를 만나는데 주변을 감시하고 군사를 지휘하
는 지휘소와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정자의 기능
을 함께 지니고 있는 이 건물은 동북각루라고도
한다. 보물 제 1709호로 지정되었다.
방화수류정은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닌다”는
뜻이다.
왕의 건물에서 일반 건물로 전환되어 온돌방이
흔적만 남아 있다.
수류정에서 아래쪽에 용연이라는 못이 있다.
이 주위가 화성에서 제일 아름다운 곳이라 한다.
동북포루에서 동북각루 방햔으로 각을 잡아 보았
다.
계속 오른쪽으로 가면 연무대와 관광안내소에 다
다른다.
왼쪽 위에 동장대가 있고
전방 높은 곳에 동북공심돈이 있다.
동장대는 무술 연마가 이루어진 곳이라 연무대라
고도 한다.
공심돈은 적의 동향을 살피기 위한 망루같은 것
으로 커다란 둥근 원같은 화성 성곽내에서 가장
특징있는 건물이다. 내부는 소라처럼 생긴 나선
형의 벽돌 계단을 통해 꼭대기에 오를 수 있어
일명 소라각이라 불린다. 연무대 넓은 터에 세계
문화유산이라는 새김돌이 있다.
창릉대로를 건너 앞에 창룡문(蒼龍門).
창룡문은 화성의 동문으로 창은 “푸르다“라는 뜻
으로 동쪽을 가르키기도 한다.
창룡문은 바깥에서 보면 양쪽 성벽이 안으로 휘
어 들어간 곳에 자리 잡고 있어 돌출된 양쪽 성
벽이 성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형태의 문도 화성의 특징일 수 있다.
이제부터 남쪽으로...
구멍이 다섯 개이고 모두 벽돌로 쌓아 만든 봉
수대로 봉돈이라한다.
더 남쪽으로 성벽을 타면 동삼치, 동남각루까지
간다.
동남각루를 지나면 팔달문으로 내려간다.
지동시장으로, 시장에서 남수문을 바라보고 팔
달문으로 간다.
화성 남문으로 보물 제402호로 지정되어 있다.
문 형태는 장안문과 비슷한 형태이다.
이어서 팔달산으로 올라 성곽을 돌아야 하는데
그냥 생략하기로 하였다.
남문시장 주위에서 차를 타고 상경하기로 한다.
(2024년 3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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