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능선을 탈취하기 위해 무박으로 동네산악회를 따라 나섰
다. 일반 회원에게는 무리라고 조언을 하였지만 이미 주사위
는 던져져 전투에 임하기가 어려우면 출정을 포기하는 수 밖
에 없다. 포기하자니 자존심도 상하고, 또한 지금 나이에
공룡을 가보지 못한다면 영원히 공룡과는 연을 맺을 수 없을
것 같아 참가하기로 하고 연습하여 지구력을 키우기로 하였
다. 연습 산행 중 무릅이 시큰 시큰한 것이 있었으나 소염
진통제를 복용하면 통증을 잊을 수 있었다.
마침내 결전의 날.
나의 고교 동기 두명까지 합류시켜 10월 17일 토요일 저녁
10시에 버스에 몸을 실었다.도합 50명. 인원 오버를 하지
않으려고 하였으나 굳이 미투가 좋아 참여하겠다는 사람들
때문에 임원진은 또 자리도 없이 서서 가야만 했다.
새벽 1시에 내설악광장에서 김치국에 밥 한술 말아 요기를
하고 한계령으로 올라(1시 반) 산행을 시작하려 하니 관리
사무소에서 3시에 출발시킨단다.
3시에 출발하면 시간 상 공룡능선을 산행하기 어렵다고 투
덜거리며 승차하여 눈을 붙이려 하니 다시 2시부터 산행을
시작시킨단다.
2시에 산행 시작.
바람이 있을 거라는 일기예보는 있었지만 그렇게 세게 불줄
은 몰랐다.몸이 날아 가지는 않았지만 균형이 무너질 정도였
다. 어제 비가 와서 등산길 곳곳에 물 웅덩이가 있고,등산
길은 고른 길이 아니라 돌 층계 내지 바위를 넘으며 어떤 곳
은 칼날같은 바위날을 넘기도 하는 고난이도 산행길이었다.
낮 같으면 그렇게 어렵겠냐마는 야간이라 더욱 가늠할 수가
없었다. 헤드랜턴은 밝은 것을 써야 하는데 경험이 부족한
나는 그저 불빛만 있으면 되는 줄 알았다.
랜턴이 좀 어두우면 내딛을 곳의 바위가 모두 평면같아 기울
기를 알 수가 없으니 결과는 뻔하지 않았겠는가?
몸은 옆으로 쏠리고 균형은 잃고, 나중에는 앞이 어른거려
어지럽기까지 하였다.
처음 출발할 때는 많은 사람이 한번에 출발하는 바람에 일행
들이 어디있는지 알 수도 없고,그렇다고 어둠 속에서 쉴 수
도 없었다. 추워서 더욱 쉴 수도 없었다.
한계령에서 서북능선 갈림길(1360m)까지 2.3km를 가서는
오른쪽 중청가는 길로 방향을 튼다. 얼마를 갔을까?
친구 청호가 머리를 나무에 부딛치는 바람에 헤드랜턴 불이
들어 오지 않는단다. 다른 친구에게 헤드랜턴이 없는 그 친
구를 잘 리드해 오라고 부탁하고 나는 앞서 갔다.
앞에서 "미투"라 외치는 소리를 듣고 쫓아가 보면 그 일행들
은 벌써 떠나고 없었다. 그리고 아무리 외길이라 하여도 앞
선 불빛이 있어야 마음이 놓이지, 어물거리다 불빛이 보이
지 않으면 다른 곳으로 갈까봐 걱정이 된다.
어떻게 지나왔는지 모르지만 선두에 섰던 일행들이 장비를 점
검한다고 잠간 쉬고 있는 곳까지 따라왔다.
얇은 장갑을 낀 나는 손 끝이 시리다고 하였더니 여벌 장갑
이 있는 사람이 빌려줘 손시린 고생은 면했다.
어느 지점부터는 바위가 미끄럽기 시작한다. 서리가 살짝 얼
어 얼음판이 되었기 때문이다. 넘어지고 미끄러지는 사람이
속출한다.
나의 친구 제포가 따라와 나하고 합류한다. 청호는 어떻게
하였냐고 하니 자기 페이스대로 갈테니 먼저 가라고 하여 앞
섰단다. 8시 10분 중청대피소 도착.
회장이 기다렸다가 시간 봐가며 공룡능선으로 갈 사람과 봉
정암으로 갈 사람을 나누겠단다. 공룡으로 가는 사람은 희
운각 대피소에서 식사를 하고, 봉정암으로 가는 사람은 봉정
암에서 식사를 한다고 한다.
그리고 공룡으로 가는 사람은 12∼14시간, 봉정암, 구곡담
계곡으로 가는 사람은 8∼10시간 소요된다고 한다.
우리는 바로 소청으로 출발, 소청에 도착하니 해가 동쪽 하
늘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소청에서 봉정암과 희운각으로 가
는 길이 갈라지는데 공룡에 도전하는 사람들은 희운각으로
내려가야 한다.
가운데 공룡능선 모습
공룡능선에서 지선으로 뻗은 범봉,
희야봉이 있는 천화대(퍼옴)
소청에서 희운각까지 1.3km인데 완전 돌계단으로 (군데 군
데 나무 계단을 만들어 놓은 곳도 있지만) 내려가는데 보통
고통스러운 곳이 아니었다.
내려디디면 디딜수록 양쪽 무릅이 시큰 시큰 거리는데 걱정이
태산이다. 미리 소염진통제를 복용하였는데도 아무 소용이 없
었다. 쿵쿵 내려 디디지도 못하고 한발 내려딛고 다른 발을
가져다 붙이는 식으로 해서 충격을 최대한 줄이며 내려갔다.
그런데 토끼같이 깡충 깡충 뛰어다니는 조남철씨가 절뚝거리
며 내려가고 있다. 이유인 즉 넘어져 양 무릅을 돌에 지찌는
바람에 찰과상을 입었지만 무릅이 시큰거려 걷기가 힘들단다.
그래 공룡을 포기하고 봉정암으로 가기 위해 다시 올라가겠
다고 한다. 내가 약을 줄 테니 약을 먹고 슬슬 가야지 어떻
게 다시 올라가겠느냐고 의중을 물었더니 그냥 나를 따르겠
다고 한다.
서로 의지하여 천천히 내려가니 희운각 도착.
희운각대피소 주위에는 인산인해를 이루어 먼저 온 일행들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소리를 지를 수도 없어 사방으로 찾
아다니는 수 밖에...
일행들을 겨우 찾아, 가지고 간 음식들을 나누어 먹는다.
옆집 박정숙씨는 오늘의 뜻깊은 산행을 성공리에 마치고 오
라고 팥밥을 싸 주었는데, 짐이 많은 나는 그 도시락을 친
구 청호의 배낭에 넣었기 때문에 제포와 나는 마눌님이 싸
준 토스트 두 쪽씩 먹고 다른 일행의 밥을 조금씩 얻어 먹었
다. 마눌님도 봉정암으로 갔으니...8시 15분 출발한단다.
조남철씨는 도저히 공룡은 안되겠다고 하고 이강길씨도 무릅
근육이 땡기고 시큰거려 포기한단다. 무릅이 시원치않은 나
도 공룡 포기. 억울하다. 공룡을 주파하려고 그렇게 연습을
하였건만 오늘따라 왜 이리 무릅이 아프단 말인가?
친구 제포에게 공룡으로 가는 일행을 따르라고 하니 전에 이
미 공룡은 타본 적이 있고, 또한 나하고 같이 즐겁게 산행
하자고 따라 왔는데 떨어지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그냥
공룡으로 가지않고 패잔병 그룹에 합류하겠단다.
서인옥씨도 마음이 약해졌는지 낙오 그룹에 합류.
5명이 다른 길로 가기로 하고 나머지 9명은 공룡으로...
최승준 대장겸 리더, 김문식, 이성환, 지영후, 김윤길과 그
의 부인 최숙녀, 김성환, 장순예, 주기섭 이상 9명으로,문
제는 지영후씨와 주기섭 여사. 두 분 다 60이 넘은 사람들
로 감히 일곱 봉우리로 이루어진 공룡능선을 탈취하겠다고
출정하는 것이 걱정스러웠다.
미투산행 때 항상 앞을 장악하고 있었던 노익장 3인방이 오
늘은 전부 넉아웃이 되어 패잔병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5명은 지도에 나와 있는 가야동계곡으로 내려가 수렴동대피
소를 거쳐 영시암으로 가려고 하였더니 길이 없다는 의견이
나와 희운각 대피소에 가서 물었다.
그랬더니 2년 전 수해로 인해 길이 모두 모두 없어져 갈 수
없다는 것이다. 할 수없이 무너미고개에서 오른쪽으로 방향
을 틀어 천불동계곡으로 내려가기로 하였다.
무너미고개에서 바라 본 공룡능선의 신선봉
전에 가 본 길이지만 천천히 단풍도 구경하면서 설악의 진미
를 다시 맛보니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금강산보다 더 아름다운 경치를 소장하고 있건만 개발시키지
않아 관광객이 접하기가 어려워 아쉬울 뿐이다.
화채봉 능선과 천화대 능선를 사이에 두고 이룬 천불동계곡,
천불폭포에서 이름을 딴 천불동 계곡은 천개의 불상이 서있
있는 듯한 바위들이 주위를 감싸고 있는 곳으로 웅장하기 그
지없다. 계곡을 내려오면서 염주폭포, 천당폭포, 오련폭포를
지난다.
공룡능선의 지선인 천화대 끝자락에는 석주길 암벽코스가 있
는데 이를 개척한 송준호는 천당폭포에서 떨어져 죽은 요델
산악회 소속 엄홍석과 신현주를 위해 그들의 이름 끝자를 따
석주길이라 명명하여 그들에게 바쳤다.
그런 비화를 품고 있는 천당폭포 앞에서 일행들의 포즈를 몇
장 담아 보았다.
천당 폭포 앞에서
내려오면서 계곡의 모습을 더 담아 보았다.
문수보살이 목욕하였다는 문수담, 귀신 얼굴같다는 귀면암,
신선이 누워 경치를 감상하였다는 와선대(臥仙臺), 원효가
도를 닦았다는 금강굴, 신선이 하늘로 올라갔다는 비선대
(飛仙臺)까지 내려 왔다.
비선대 산장에서 빈대떡에 막걸리로 목을 축이며 장군봉, 무
명봉, 적벽으로 이루어진 삼형제봉을 훑어 본다.
비선대에서 바라 본 장군봉, 무명봉, 적벽
2년 전 암벽 도전으로 적벽을 넘었으나 무명봉 못 미쳐 포기
하고 이쪽으로 직접 하강하였던 바로 그곳 아닌가?
정말 아슬아슬하게 생긴 바위가 오금 저리게 내려다 보는 적
벽. 오늘도 5∼6명이 매달려 스릴을 즐기고 있었다.
금강굴 앞 설악골, 더 위에 있는 잦은 바위골로 오르면 공룡
에서 갈라져 나온 천화대, 범봉, 희야봉 등등 암벽 코스로
유명한 곳이 아닌가? 석주길도 있고...
바람에 몸이 식어가는 것 같아 서둘러 술자리를 거두고 다시
내려가기 시작했다. 오른쪽 산 위에 걸린 태양은 꼭 서산으
로 넘어가는 저녁해 같이 보였다.
시계는 11시도 되지 않았는데...
신흥사 도착.
커다란 좌불을 만들어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데 역사적 가치
나 따지는 나에게는 아무런 흥미거리가 되지 않는다.
신흥사는 신라 진덕여왕 6년 자장율사가 창건하여 향성사(
香城寺)라 하였다 한다. 그리 오래된 절이 화재로 인해 많은
것이 소실되고 남은 것 한가지.
향성사 3층석탑이 보물 443호로 지정되어 있다. 지금은 향
성사터라 하는 켄싱턴호텔 앞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전에는 9층 석탑이었으나 임진왜란 후 3층만 남아 현재까지
남아있는 것이다.
기타 단청과 공포가 아름다운 극락보전, 신흥사 경판, 청동
시루, 석조계단(호랑이 무늬가 섬세한 섬돌) 등이 신경 써
서 관찰할 만한 것들이다. 그러나 나도 기초 실력이 없어
거기까지 관심을 갖지 못했다.
다음 기회에는 꼭 신경 써서 찾아 보아야 하겠다.
신흥사 지나 소공원까지 오니 12시 30분.
희운각에서 대략 4시간 걸려 내려 오고, 한계령에서 소공원
까지 10시간 반 걸린 듯.
소공원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속초 시외버스터미날까지 왔으나
시간이 남을 것 같아 바닷가 포장마차에서 양미리와 오징어
를 안주 삼아 한잔씩 나누는 여유를 가졌다.
그리고 시외버스터미날로 가서 물으니 버스가 자주 있지 않
단다.할 수 없이 택시를 타고 백담사가 있는 용대리로 갔다.
용대리에 도착하니 곳곳에 버스가 얼마나 많은지 정신이 없
다. 전화를 걸어 우리의 버스를 찾아 가니 회원 10여 명이
있었다. 봉정암으로 내려 온 6명과 처음부터 이쪽에서 백담
사 위로 올랐다가 되돌아 내려 온 몇 명이 있었다.
그들과 함께 술잔을 기우리기를 두어 시간, 봉정암 팀이 도
착하기 시작한다. 백담사에서 셔틀버스를 타려고 햐였더니
너무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기에(두 시간 이상) 그냥
걸어 내려 왔단다.
백담사에서 이곳까지 거의 7.5km가 넘는데...
지칠대로 지친 회원들이 또 걸었다니 얼마나 심신이 피로할
가 이해가 된다. 그러나마나 공룡능선 팀이 아직 소식이 없
다. 5시 넘어서야 백담사까지 도착하였다는 소식이 들려온
다. 그들도 역시 백담사까지 운행하는 셔틀버스는 탈 수 없
어서 걸어 오고 있다 한다. 6시 30분 정도에 그들이 도착
하였다. 이미 날은 어두워 밖에 펴놓았던 깔판과 음식은 걷
어 치운 상태. 그렇게 짱짱하던 김성환씨가 얼굴이 하얗게
그로기 상태로 차에 오른다.
나머지 식구들도 모두 도착하여 차를 탔다.
정말 대단한 회원들이다. 지영후씨는 다른 산행 때 항상 뒤
에서 늦게 도착하여 모든 산행을 힘들게하는 사람으로 생각
했었는데 공룡을 주파하다니 이 어찌된 일인가?
빠르게 산행을 하지는 못하지만 지구력은 강한 사람으로 생각
할 수 밖에 없다. 또한 주기섭님은 연세가 60이 넘는 여성
으로 그곳을 완주하였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의지를 가진 분
이라 생각된다.
봉정암으로 산행한 나머지 회원들도 12시간 이상 산행을 하
였으니 이 또한 얼마나 대견한 사람들인가?
설악산은 항상 무섭고 어려운 산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며
나는 더 이상 공룡을 내 것으로 만들기에는 물 건너 갔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공룡에 도전하려면 대피소에서 하루 자
고 1박 2일에 주파하는 것이나 도전하여 볼까,무박은 완전
포기해야겠다는 것을 새삼 깨달은 산행이었다.
공룡의 모습을 다른 곳에서 조금 더 옮겨 놓았다.
(2009년 10월 17∼18일)
p.s 출발할 때는 어두워서 사진이 없고 날이 밝은 다음
우리는 천불동계곡으로 갔기 때문에 그 쪽 사진만 있으며 공
룡 사진은 없다.하여 위의 공룡 4장은 다른 곳에서 퍼 왔다